대중문화는 대중의 선택
안 성 봉
1992년 한국 가요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사건 하나가 있다.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이다. 당시 신곡 무대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난 알아요>라는 랩 장르의 음악으로 나름 인지도가 있는 국내 음악가와 유명가수 등 총 4명이 심사를 하였는데 10점 만점에 각각 8점, 7점, 8점, 8점으로 평균 점수 7.8로 좋지 않았다.
당시 1990년대는 요즘처럼 인터넷에서 가요를 쉽게 접할 수 없는 시기였기에 TV와 라디오 방송과 음반을 구입하여야만 들을 수 있었으므로 신인 가수들은 자신의 신곡을 대중에게 한번 공개하기란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게다가 그 당시 발라드와 댄스 그리고 트롯 음악이 주를 이루었던 한국 가요계에서 랩댄스는 굉장히 낯선 장르였다. 최초의 랩장르로는 1990년에 발표한 신해철 2집에 수록된 도입부가 약간의 랩인 발라드 곡 <재즈카페>로 성공을 하였고, 이듬해 1991년 신해철이 결성한 밴드 ‘넥스트’가 발표한 경쾌한 락발라드 풍의 <도시인>으로 랩장르가 어느정도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그 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다. 그리고 그 신곡무대라는 프로그램은 폐지가 되었고 심사를 한 음악가들과 그 가수는 완전히 매장되다시피 공중파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처럼 ‘대중문화는 전문가의 평가가 아닌 대중의 선택’인 것이다. 대중성이 있다는 말은 시장성이 있다는 말과 같다.
물론 예술가곡은 전문가들이 평가한다. 하지만 성악가들도 공연시 대중이 선호하는 ‘선구자’, ‘진달래 꽃’, ‘봄이 오면’, ‘희망의 나라로’ 등의 곡을 많이 부른다. 결국 이 또한 대중이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때 루치아노 파파로티,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등의 세계 3대 테너도 클래식 전문가들이 선정한 것이 아닌 음반 판매량과 초청 공연과 설문 조사 등에 근거하여 성악을 즐겨 듣는 세계의 대중들이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역시 동양인이지만 유럽에서 공연때 마다 티켓이 조기 매진되고 초청공연이 많아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공연티켓의 구입과 수많은 초청 공연은 대중의 선택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 오스트리아 출신 헤르베르 폰 카라얀은 음반 509종, 영상물 78종을 남긴 음악계의 황제였으며 사후에 발매된 음반과 영상물까지 더하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항상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의 지휘법에 대하여 항상 찬반의 논란 여지가 있는 지휘자였다. 그러나 클래식 대중들은 카라얀의 지휘에 열광하였고 사후에도 1년에 10억에 가까운 음반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음반 판매량은 시장성이 있다는 뜻으로 대중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조수미 역시 카라얀이 “백년에 한두명 나올까 말까한 목소리”라며 극찬을 하며 더욱 유명해졌다.
문학도 그렇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퍼지든 2000년 초에 유행한 맞춤법을 무시한 인터넷 소설은 한글 파괴라는 비판을 받았고, 판타지 소설은 유익하지 않다며 즐겨 읽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걱정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통신언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겨났고, 판타지 소설도 지금은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판타지 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수 있는 소설 ‘반지의 제왕’은 전세계적으로 열풍이었고, 영화 ‘반지의 제왕’은 수상하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아카데미상을 각 부문별로 휩쓸었으며 단어 하나도 등재되기도 힘든 옥스퍼드 사전에도 소설에 나온 단어가 여럿 등재되는 등 예술계와 문학계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이렇듯 문학도 대중문화이므로 전문가가 평가하는 것이 아닌 대중이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태풍처럼 휩쓸었던 ‘홀로서기’ 역시 대중이 선택한 것이다. 전국의 서점에서 판매량은 물론 전국의 카페와 음식점 등의 벽에 걸어놨으니 말이다.
요즘 시집과 소설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대중성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완연한 개인적인 견해로써 대중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중성이 없다는 것은 ‘재미가 없다’와 ‘별다른 감동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온라인상에서 대중은 많은 정보를 얻고 수많은 흥미로운 컨텐츠를 접하는데 문인의 문학적 정서는 8~90년대에 머물러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리고 기성 문인들의 특유의 아집과 독선과 위선으로 인한 기존의 방식만을 고수하는 것도 한몫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문학관과 작품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기성 문인들에 대한 신인 문인들의 실망과 반발로 젊은 문학인들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문학 이외에도 접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 무한정 많다.
시를 너무 비유와 상징과 압축에만 얽매인다면 독자는 무슨 뜻인지 모른다. 무슨 첩보 영화의 암호 혹은 판타지 소설의 암시 같이 느껴진다. 그렇게 모르면 재미가 없으니 읽지를 않는다. 즉 대중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철학이다. 하지만 깊이가 없다면 문학도 철학도 아니다. 그냥 말장난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나름 문인이라고 자부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주지도 않는다면 혼자 낙서 한 듯 한 글일 뿐이리라.
공중파 TV 방송은 말 할 것도 없이 대중의 선호도에 민감하다. 한때는 막장 드라마가 유행하였고 유사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시청율 올리려 한 것은 물론 개그 프로그램은 이제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렇듯 대중의 선택이 매정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한번 돌아선 대중은 다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풍조가 변한 2020년대인 요즘 8~90년대 문체는 따분하여 조금 읽다가 덮어버린다. 나 역시 그렇다. 언어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진화를 하는데 문인의 문장이 그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면 도태되거나 소멸할 것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번역서 역시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에 출간된 서적을 보면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90년대 출간 번역서를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조금 읽다가 덮어버린다.
문예사조를 보면 항상 새로운 작법은 혼란을 가져옴과 동시에 비난의 대상이었다. 한 예로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 C.P.)의 ‘악의 꽃’은 출간 당시 많은 충격을 줌과 동시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보들레와 출판사는 고발당했으며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벌금선고를 받고 수록된 시 6편을 삭제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보들레르의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은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출발의 신호탄이었다. 프랑스 국민들은 ‘악의 꽃’에 열광하였다. 그리고 베를렌(Verlaine, P.)·랭보(Rimbaud, A.)·말라르메(Mallarmé, S.)로 발전해갔고, 곧 영국 등의 유럽으로 확산되었으며, 1920년 전후부터는 한국에도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징주의 역시 유럽 대중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이 자기만의 세상을 담은 것일지라도 작품은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문인이라면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추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문학관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시대에 흐름에도 순응할 줄도 알아야 하고 나름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손자병법이 이런 구절이 있다.
고 거 추 호 불 위 다 력 견 일 월 불 위 명 목 문 뢰 정 불 위 총 이
故擧秋毫 不爲多力 見日月 不爲明目 聞雷霆 不爲聰耳.
(그러므로 가을 터럭을 들었다고 하여 힘이 세다고 하지 않고, 해와 달을 보았다고 하여 눈이 밝다고 하지 않으며, 천둥과 벼락소리를 들었다고 하여 귀가 밝다고 하지 않는다.)
아집과 독선과 위선에 빠져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의미로 문인에게 좋은 문구인 것 같다.
2022년 《수필뜨락》 창간호에 당선(신인상)
기장의 침착한 안내 방송
안성봉
2019년 8월 23일 금요일, 아들 석찬이의 6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 2박 4일 일정으로 단 둘이서 홍콩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LCC(저가 항공) 노선의 증가와 항공사끼리의 경쟁으로 낮아진 항공료 덕분에 해외여행을 부담없이 갈 수 있었다. 특히 8월은 홍콩 지역이 습도도 높고 무더워서 비수기이므로 저렴한 가격에 여행을 갈 수 있었다. 그 대신 넓은 좌석과 비행기 위치를 알려주는 모니터 화면이나 기내식 및 음료 서비스는 꿈도 꾸지 말아야 했다
이틀 동안 매우 만족스럽게 홍콩과 마카오를 둘러보고 귀국하기 위해 홍콩국제공항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당시 홍콩은 시위로 시끄러웠는데, 25일 일요일에는 시위대가 공항으로 진입하던 중에 진압 경찰과 심한 충돌이 있어서인지 공항 출입이 상당히 엄격하였다. 그래서 이틀간 동행하였던 홍콩 현지 가이드와는 공항 입구에서 작별 인사를 하였다.
비행기 표 티켓팅과 출국 수속을 하면서 자정이 넘어 월요일이 되었다. 부산행 비행기 게이트 앞에서 약 1시간을 기다려 26일 월요일 홍콩 시간 01:00(한국 시간 02:00)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있는데 갑자기 비를 동반한 돌풍이 심하게 불었다. 하지만 예정대로 탑승 절차를 진행하기에 석찬이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비행기가 활주로 이동 중에 기장이 기내 방송을 했다.
“손님 여러분, 이 비행기는 홍콩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는 BX-000편입니다. 현재 강한 돌풍과 비로 인하여 이륙이 다소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륙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폭우가 내리면서 번개까지 친다.
“아빠, 이런 날씨에는 이착륙하는 기장이 엄청 힘들대요. 공중대기 하거나 착륙 실패하면 Go-around(고어라운드, 복행) 해야 하는데, 두 번 실패하면 연료가 바닥나서 기장들 심리적 압박이 상당하대요.”
조종사가 꿈인 석찬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창밖으로 옆에 보이는 활주로에서는 폭우 속에서도 몇 대의 비행기가 착륙에 성공하는 것이 보였다.
“기장들 실력 대단하네.”
“그러게요.”
동남아는 기류 변화가 심해서 언제 폭우를 동반한 돌풍과 강풍이 몰아칠지 모른다. 동남아에 인접하여 습도가 높고 해양성 기후인 홍콩도 마찬가지이다. 10여 분 정도 대기 후에 비행기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5분여 후에 다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손님 여러분,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제탑으로부터 이륙 허가를 받았습니다. 곧 이륙하겠습니다.”
약 20분 정도 지연되었다. 창측에 앉은 석찬이는 휴대전화로 동영상 촬영을 준비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륙과 착륙 시에는 반드시 동영상으로 촬영하는데, 폭우와 강풍 속에서 이륙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녀석은 촬영에 집중했다.
기내에는 모든 실내등이 꺼지고 활주로에 들어서자 맞바람을 맞으며 비행기는 잠시 멈춘 듯하더니, 냅다 출력을 높이기 시작한다. 양쪽 날개에 달린 터빈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고 비행기는 높은 속력을 내며 몇 초도 채 되지 않아 이륙을 한다.
“와!! 최대 출력이다.”
석찬이가 감탄한다. 홍콩국제공항의 불빛이 점점 멀어지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비행기는 쿵쿵 부딪히는 듯한 소리를 내며 한동안 심하게 흔들렸다.
창밖으로 번쩍거리며 낙뢰가 치는 것도 보였다. 여기저기서 승객들의 놀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승무원들은 차분했다.
“아빠 무서워요.”
석찬이도 무서운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괜찮다.”
나도 좀 무서웠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비행기가 계속 상승하던 중 갑자기 우~우~웅~ 소리를 내며 하강하다가 잠시 후 다시 상승을 하기 시작했다. 기내는 깜깜한데다 갑작스런 비행기 하강에 탑승객들은 모두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여전히 기체가 많이 흔들렸기에 승객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손님 여러분, 기장입니다. 비행기가 심한 난기류로 많이 흔들렸습니다. 상당히 죄송합니다.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목적지까지 무사히 여러분들을 모셔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장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침착하고 차분했다. 그래서인지 기내는 금방 안정이 되었다. 나 또한 기장의 기내 방송으로 안심이 되었다.
비행기는 계속 흔들렸지만, 동요하거나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적정 고도에 올라왔는지 비행기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기내는 고요해지면서 실내등이 켜졌다. 가끔씩 흔들리기는 하였지만 더한 것도 겪은 후여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서 구름 위에서 해가 뜨는 장관을 보며 우리는 김해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베테랑 기장들이라도 난기류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면 긴장이 된다고 한다. 그럴 때 기장이 놀라서 당황한다면 어둡고 그 높은 하늘에서 기내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버릴 것이다.
‘명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조직이나 기관을 맡은 장(長)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가정도 단체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최고 책임자가 투철한 신념과 철학을 가졌을 때 그 조직의 앞날은 밝고 희망적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꿈을 가져 보지만 아무나 될 수 없는 비행기 기장, 많은 탑승객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우리 아들 석찬이! 너도 그때 그 기장처럼 승객들에게 신뢰를 받는 멋진 조종사가 될수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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