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지어꽃 외 4편 - 김정옥
프리지어꽃
나는 출근하지 않고
선샤인(주석달기:가수 ‘퍼피퍼피’가 부른 노래 'Sunshine' )
켜진 이른 아침
프리지어꽃무늬 원피스 차림으로
새 첫사랑을 찾아 길을 나설 거예요
누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면 좋겠어요
그러면 나는 그에게 프리지어꽃 한 송이를 건넬 거예요
나에게 프리지어꽃을 닮았다고 말해주는 이에게
그대가 내 새 첫사랑이라고 말할 거예요
종일 헤매어
구두가 연두빛이어도 좋아요
돌아오는 길
강아지구름에게 한 송이
시냇물 송사리에게 한 송이
상수리나무 구멍 속 다람쥐에게도 한 송이
마지막 한 송이
내 고픈 옛사랑에게
소인 찍어 빠른등기로 보낼 거예요
누가 내게
노오란 프리지어꽃 한 다발 선물해 주신다면
저편
오늘, 텃밭 두 그루 감 따며 바라본
저편 나뭇가지 탐스럽게 익은 감 서너 개
그 감을 따려 저편 나무에 오르면 도무지 보이질 않아
순이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가
9월이면 그녀 집
꼭지 떨어진 풋감 서너 개
담장 위에서 나란히 익어갈 때면
그 닮은 단발머리 순이 뒤통수 보일 것만 같아
괜스레 담장 밑을 서성이고
빨갛게 물드는 대추알이 부러웠지
나뭇가지 사이 앉은 돌멩이처럼
어쩌면 순이
웃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이파리에 가려 도무지 알 수 없던 마음
이편에 쪼그리고 앉아
쳐다보기만 한
저편
파리
텅 빈 주차장
가로질러 빠져나가는 차량 지붕 위
눈바람 따라
파리도 한 마리 날아간다.
홀로 남은 파리
창문에 붙어 오르락내리락
자빠지고 꼬꾸라지다 평균곤 부러지고
평형 잃은 몸 곤두박질치기 여러 번
마침내
피 나는 두 발톱
맛도 냄새도 느낄 수 없는 몸
둥지 같던 품조차 잃어
바람맞고 서 있는 한 여인처럼
작별
여보세요?
너의 첫 마디에
나는 이렇게 목이 메고
여보세요?
읽지 못하는 네 말
내 젖은 말은 자꾸 헛돌아
울먹울먹
수화기 너머에선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
당겨 올리는 네 울림
자꾸자꾸
허공에 외치고
대책 없는 바램
밤을 꼬박 새우고 돌아온 새벽
느닷없이 내미는 결연한 네 의지
그 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거라는데
대학교 시험 합격자 발표날
끓어오르는 아궁이 앞에 앉아
엄마 나 대학교 붙었으면 좋겠나 떨어졌으면 좋겠나
한참 동안 말 없던 엄마
어둠 어슴푸레 깔린 저녁
대학교 합격 소식 전하고
부지깽이 들고 따라오던 엄마에게 쫒겨
집 나가 사흘을 못 돌아왔었던 언니
떨어지는 것보다는 붙는 게 낫지
그래
이왕에 하는 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의지대로 하렴
그때 엄마나
지금의 나나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
혼자 있을 때나 만져 보는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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