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 라는 옛말이 무색하다.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께 차례를 올리는 풍성한 추석을 기대한건 아니다. 예년보다 올해는 유난히 비도 많았고 추석이 일러 물가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예상도 했었다. 하지만 대목장에 나가보니 채소며 과일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물건값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평소에 1단에 3,000원씩 하던 미나리며 실파가 5,000원 으로 뛰었는가 하면 사과 한개 포도 한 송이도 6,000원 7,000원을 달라고 한다.
이래저래 즐거워야 할 추석이 짜증스럽고 스트레스였는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이람. 작년에 내린 우박과 루사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광란의 태풍이 또 공포에 떨게 할 줄이야. 태풍이 오면 그 강도를 약하게 하기 위해 여자의 이름을 붙여 준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요즘 여자들의 위치가 상승해서 인지 해가 거듭 될수록 태풍의 강도도 더 높아만 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런 광란 앞에 자연재해라고, 천재지변이라고 이름 지어 놓고 팔짱 끼고 방관만 하는 무기력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매미”가 지나 간지도 3일이 지났다. 습관처럼 새벽5시에 일어나 연호사에서 부처님께 참배한 후 황강변에 위치한 비봉산에 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들은 참으로 형언 할 수 없는 비참함에 울컥 목에서 뭐가 쏟아져 나오려고 한다. 그 젊은 잎들은 가지 채 부러져서 땅위에 어지럽게 쌓여있다. 가슴이 저리다 못해 쓰라린다. 산에 오르면 상큼한 솔향기가 너무 좋아 크게 심호흡을 하고 폐부 깊숙이 들이키던 향기지만 오늘은 숨도 크게 쉬지 못 하겠다.
내 한 아름이 넘는 소나무가 뿌리 채 뽑혀 길을 가로질러 누워 있는가 하면 튼튼하지 못한 나무들은 보기에도 고통스럽게 꺾여져 있다. 나처럼 옆으로 몸을 불렸더라면 부러지는 아픔은 없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
누가 그랬는지 친절하게도 길 위에 가로 누워있는 소나무를 톱으로 가지를 자르고 다듬어서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게끔 터널을 만들어 놓았다. 하루하루 시들어 가는 나무 밑을 지날 때는 미안한 마음에 빨리 지나가게 된다. 우리는 자연에게서 이렇게 맑은 공기와 운동하기 좋은 장소를 만들어 제공받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인간들의 무력함이 자연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언제 광란이 있었냐는 듯이 오늘 햇살은 시리도록 맑다. 강 위를 지나 소나무 사이로 내미는 햇살은 얄밉기 까지 하다.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았지만 뽑히고 부러진 나무들이 60에 70그루는 족히 될 것 같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산을 걷고 있을까? 표정들은 무심해 보인다.
읍내와 약 15분 거리에 있어 정말 고맙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에 오르는데 무슨 말로 뭐라고 나무들에게 위로를 해 줄까? 유산소 운동 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코스는 없을 것이다. 그 미친바람에도 용하게 견뎌준 나무 하나하나마다 뜨겁게 껴안아 주고 싶다.
천재지변 앞에 속수무책인 우리 인간들이 산에 오를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산에 오를 때 마다 보여지는 이 처참한 모습들은 언제쯤 지워질까?
최병태
2003-10-12 19:16:26
인간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면서 소유의 욕구만 가졌지, 우리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의 관계를 너무 소홀히하여 항상 대립 관계에 있어 왔지요.언제나 우주만물의 질서를 깨뜨리는 건
최병태
2003-10-12 19:20:30
우리네 인간들이었구요. 어찌보면 만물중에 가장 자연과의 관계가 밀접한 것이 없을텐데 너무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가장 혹독한 시련을 자연의로부터 겪게되는게 아니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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