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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문학기행
추천 : 15 이름 : 이성동 작성일 : 2019-02-01 14:44:12 조회수 : 136
                                                      2018 문학기행

2018년도 문학기행이 예년처럼 이화예식장 앞에서 출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작년에 찾아 갔던 곳이 백제의 석탑문화를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왕궁리의 오층석탑과 신라의 선화공주와 백제 무왕의 러브스토리가 구전되어오는 미륵사지의 석탑으로 유명한 백제 제 2의 역사유적지 익산지역 투어였다면 금년에 우리가 찾아나서는 곳은 합천 출생 주세붕 선생이 최초로 백운동 서원을 건립하여 안향(安珦)의 성리학을 이 땅에 전파시킴으로써 유불(儒佛)문화를 꽃피웠던 역사의 고장 경북의 영주(당시는 순흥)를 중심으로 하는 기획 투어였다. 겨울의 문턱인 12월의 첫날 아침,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잿빛 아침 안개가 자욱이 깔려있는 이화예식장 앞에 회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원로 시인 손국복. 김숙희 회장과 아동문학가 이동배 시조 시인, 윤경선 농부시인, 최병태 부회장, 정유미 시인, 사무국장 김호근 시인, 금년 합천예술제 ‘문학의 밤’과 ‘황강백일장’ 행사를 원만하게 잘 진행한 작은 거인 김현숙 시인, 2018 문학의 밤 행사 때 3인방 합동 시 낭송으로 신인답지 않은 면모를 선보이고, 황강백일장 시상식에도 사회를 맡아 원활한 진행으로 김현숙 시인 다음 타자로 기대되는 선 보영 신임 회원, 모두 자기가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금년에도 합천문학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해마다 연말에 시행하는 문학기행은 지난 한 해 동안 합천문협 행사를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인 회원들에 대한 위로와 화합의 기회가 되고 새 해의 새로운 문학활동을 더 역동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에너지 충전의 기회로 시행되는 합천문협의 유일한 연말 역점 프로젝트이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이번 문학기행에 다수 회원이 불참했다. 송영화 회장도  이화예식장앞까지 나와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며 금일봉을 전했다.
합천이 배출한 한국아동문학 원로작가 소민호 선생님, 금년에 합천문협회원으로 등록한 가회중학교장 김정옥 시인과 윤이솜 씨, 해마다 문학기행 때 온갖 잡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조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이홍래, 김경식, 하철종 시인, 삼가초등학교에 상담교사로 근무하는 이동실 수필작가 등은 모두 공무나 개인 사정으로 동참하지 못해 참석한 회원들에게 아쉬운 마음을 안겨주었다. 그런데도 이날 아침 비회원 이 미화 씨와 금년 이 때 입회하여 1년 돌을 맞는 선 보영 씨, 그녀의 초등학생 어린 딸 박 민교와 그의 친구 이 서형이 동승하여 차 안은 금방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함께 떠나지 못한 회원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이 미화 씨는 평소 합천문협의 열렬한 팬이다. 문학행사 때 가끔씩 참여해 합천문협의 일을 도우고 있는 새댁으로 앞으로 정식 회원 가입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이다.

                         대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우리가 탑승한 엔젤렌타카는 아침 8시를 조금 지나 이화예식장 앞을 출발하여 중간 목표지인 대구향촌동 소재 대구문학관을 향하고 있었다. 33번 국도상의 차 안에는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임호인의 서정시를 윤경선 시인이 낭송하고 이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의 시를 김호근 시인이 낭송하였다.  
대구시가 낳은 저명 작가들의 시가 운율(韻律)에 맞춰 낭송되면서 문학적 분위기가 차 안에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어 회원 각자의 지난해의 반성과 신년의 계획을 발표하는 차내 프로그램이 지난해처럼 진행되었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면 누구나 연초에 한 해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되겠지만 나이 60 이상의 노인에게는 무엇보다도 건강관리와 적절한 여가 선용이 노후의 바람직한 생활모습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숙이의 주문은 나를 비켜갔다. 그리고 손국복 교육장님의 차례가 되자, 그는 그날 차에 탑승한 회원마다 평소 해온 일을 높이 평가하고 회원들의 마음을 고무시켜 자존감을 한껏 높여주었다. 그런 연후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해관계에 부딪히는 상대를 용서할 수 있고,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때로는 상대에게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도량이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다. 그런 연후 그는 대구문학의 대표적인 인물, 현진건과 그의 작품을 소개해주었다. 대구 출생의 현진건은 1920년 <개벽>지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고, <백조(白潮)> 동인으로 <타락자(墮落者)>·<운수 좋은 날>·<불> 등을 발표함으로써 염상섭(廉想涉)과 함께 사실주의(realism)를 개척한 작가로서, 김동인(金東仁)과 더불어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중 <운수 좋은 날>은 일제 강점기 한 인력거꾼의 생활을 그려낸 작품으로, 병든 아내의 죽음을 보게 되는 아이러니를 통해 일제치하 우리민족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내용이다. 나는 그의 작품세계,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스토리를 들으면서 현진건의 문학에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대구문학관

일행이 대구시 중구 중앙로 향촌동에 소재한 대구문학관에 도착한 시각은 이날 오전 9시경이다.
대구 향촌동은 6,25 전쟁 때 피난 내려온 문인과 예술인들이 작품활동을 통해 피란살이의 고단한 심사를 달래며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쏟았던 곳이다. 음악가 김동진, 나운영, 권태호, 연예인 신상옥, 최은희, 장민호, 화가 권옥연, 김환기, 이중섭 등이 향촌동의 다방을 본거지로 활동하며 남긴 일화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대구문학관은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대구` 경북지역에서 활동했던 이들 문학인과 예술인들의 작품들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곳이다.
영남문학이 뿌리내린 곳 대구, 일제강점기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 사실주의 소설가 현진건, 감각 시의 지평을 연 이장희를 비롯한 기라성 같은 예술인을 배출한 문화예술의 도시, 대구향촌동에 위치한 대구문학관 안에는 이들의 시 세계를 조명한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고, 근대문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대구` 경북의 문학행사는 물론 대구시가 인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의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 곳이다.  
1912년 대구 최초로 건립된 일반은행인 선남 산업은행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지금의 문화시설을 조성했다. 다양한 문학서가 전시되어 있고, 근대문학여명기의 영남의 문학인들이 활동하던 문학공간이 옛날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 일제에 항거했던 예술인과 문학인들이 드나들던 향촌동 골목, 플라스틱으로 만든 먹음직한 모형음식이 실물처럼 전시실 한 코너에 마련되어 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여명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던 대구문단은 한국근대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광복과 더불어 이념적 갈등을 겪으면서 새싹을 틔웠다.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전쟁문학 담론의 중심지가 되었고, 전후부터 문학의 새로운 활로와 지평을 열고 다지면서 대구가 ‘문학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된 곳이다. 

                        영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대구문학관을 둘러보고 다음코스로 향하는 곳은 영주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적지이다. 차 안에서는 지난해 자기 목표 성취여부에 대한 프로그램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동배 시조시인은 작년은 어느 해보다 바빴다고 한다. 그가 가입한 문학회는 합천 외에도 김해와 통영, 진주 등 많은 곳의 문학회에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말해주듯 그는 전방위적 작가로 교직 퇴임 후에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합천문학회 행사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열성회원으로 합천문협 회원들로부터 많은 찬사와 깊은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 일성은 지방문학이 있어야 중앙문학이 있다고 말하고, 문학관이 없는 합천에도 문학관이 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다 같이 즐기고 향유하는 문학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동궁식당에서
  
일행이 영주시 번영로에 소재한 동궁식당에 도착한 시각은 이날 오후 12시 40분, 소수서원이 2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경북 영주의 향토식품 봉화군 청정산에서 채취한 항암효과와 당뇨병 등 성인병에 특효가 있다는 자연산 송이버섯, 산삼나물과 엄나무순을 재료로 이용하는 토속음식점이다. 우리가 이날 이 식당에서 주문하여 먹은 음식은 엄나무돌솥밥과 곤드레돌솥밥으로 우리 지방에서는 먹기 어려운 약용 식물을 가미한 특별 메뉴였다. 우리 문학기행을 위해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사람들의 배려가 저절로 느껴진다.

                        소수서원(紹修書院)

동궁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이 다시 차에 탑승하여 20여분 북동쪽으로 달려 도착한 곳이 소수서원이다. 서원 입구에 70대로 보이는 송재승 해설사가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소수서원을 창건한 주세붕 선생의 고향에서 온 사람들이라 우리 일행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 더 정성스레 보였다.
교육은 국가 미래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하게 여긴다. 교육이 없는 나라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향교가 그 기능을 잃고 국가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을 때, 주세붕 선생이 조선 중종 38년(1543년)에 세워 교육입국(敎育立國)의 기원(起源)을 마련한 것이 서원의 효시가 된 백운동서원이다. 명종 대에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어 수많은 명현거유(明賢巨儒)의 배출은 물론 학문탐구의 소중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당시의 건물들이 경내에 그대로 배치되고 있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백운동 서원을 건립한 후 주세붕 선생은 안향(安珦) 선생의 영정을 서원에 봉안하였다. 조선 건국이념이자 통치철학으로 삼았던 성리학은 주희가 집대성하여 철학적 체계를 세운 학문으로 충렬왕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다녀온 안향이 ‘주자전서’를 가지고 들여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백운동 서원은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조정에 건의하여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사액되었다. 사액서원이란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아 면세와 면역의 특권을 갖는 서원이다. ‘소수(紹修)’는 “이미 무너진 교학(敎學)을 닦게 하다”는 뜻으로 학문 부흥에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당시 명종임금이 손수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공인된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았던 소수서원은 인조 11년(1633년)에는 서원을 창건한 주세붕 선생을 추향(追享)하였다.
1543년 조선에 최초로 건립한 소수서원은 유생이 많을 때는 무려 4,000여명에 이르렀지만, 1888년에는 유생이 단 1명이 입학하였는데 이는 민생에 피해가 많았던 서원을 흥선대원군이 집정하면서 철폐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황해도 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면서 청백리에 녹선되었던 주세붕 선생은 많은 저서를 남겼다. 경내에는 강학당, 일신재, 직방재, 학구재, 지락재, 서고, 문성공 묘(廟 : 제실) 등이 있고, 안향 초상(국보 제111호) 등 중요한 유물과 각종 전적(典籍)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이곳이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숙주사지 당간지주(보물 제 59호)의 불적(佛蹟)도 남아있어 우리의 전통문화를 엿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입학한 유생들은 매월마다 한 번씩 치르는 월강, 초하루, 보름에 치르는 만강, 초순 중순 하순마다 치르는 순강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 시험 가운데 8번 낙방하면 ‘팔불출’이 되어 봇짐을 챙겨 집으로 낙향하는 신세가 된다고 하는데, 이후 모든 서원들이 이 소수서원의 제도를 그대로 본받아 시행했다고 송재승 해설사가 코믹스토리로 들려주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소수서원과 함께 영남의 9개 서원이 2019년 6월 30일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앞두고 있다고 말하며, 해설을 종료했다.

                     부석사

일행이 소수서원 답사를 마치고 다음 코스로 향한 곳은 소백산을 배경으로 한 산수가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부석사였다. 부석사는 그냥 아름답다는 미사(美辭)로는 그 장쾌하고 정연한 자태를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부석사 자체가 품고 있는 위대한 건축미를 건축양식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표소에서 천왕문까지는 1km가 넘고 콘크리트로 포장한 오르막길이라 나 같은 노인은 호흡을 조절하며 서서히 오를 수밖에 없다.
오르는 길 중턱 왼편에 불사 때 게양하던 돌로 된 당간지주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 수많은 당간지주 중 가장 늘씬한 몸매의 세련미를 보여주는 명작품이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좁혀지는 체감율과 끝마무리를 꽃잎처럼 공글린 섬세성, 수직적 상승감을 느끼는 조형미, 모두가 석공의 공력(功力)이 돋보이는 예술 작품이다. 오르막길이 끝나고 낮은 돌계단을 올라 천왕문에 이르니 여기서부터 사바세계가 끝나고 불국정토임을 느낄 수 있는 부석사 경내다. 사천왕이 지키고 있으니 그 안쪽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이 사바세계 오시기 전에 주재하고 있었던 도솔천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요사채를 거쳐 범종루,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다다르기까지 우리는 구계단(九階段)의 석축 돌계단을 넘어야 했다. 그것은 곧 극락세계의 9품 만다라의 이미지를 건축적 구조로 구현시킨 것이다. 만다라(曼茶羅)는 우주 법계(法界)의 온갖 덕을 망라한 진수(眞髓)를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佛畫)이다. 이 석축들은 의상대사가 법성게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임(一中一切多中一)”을 입증하는 상징적 이미지까지 내포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석사의 창건배경이 여기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은 자주적이고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그 영역이 대동강과  원산만을 연결하는 선 이남 지역이기 때문에  당나라의 간섭을 받아야 했고, 백제, 고구려 유민들의 반발로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이에 이들의 민심을 수습하고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정신적 구심점이 필요했던 것이다. 화엄종찰 부석사의 창건 배경이 그것이다.
의상대사는 무력으로 통일한 삼국을 하나의 정신세계로 융합하는 것은 화엄세계의 실현만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부석사를 창건하였다. 그의 그러한 원력은 가람과 공간배치 하나하나에도 배어있는 것이다.
천왕문에서 세 계단을 오른 후 밟을 수 있는 넓은 마당은 3품 3배의 하품단(下品段) 끝이 되며 여기에는 요사채가 조용한 자태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다시 세 계단을 오르는 중품단은 범종이 걸린 범종루(凡種樓)다. 그 양 옆으로 강원(講院)인 응향각(凝香閣)과 취현암(醉玄菴)이 자리잡고 있다.
범종루에서 다시 세 계단을 오르면 그것이 상품단(上品段)이 되며 마지막 계단은 안양루(安養樓)이다. 안양루 누각 밑을 거쳐 무량수전 앞마당에 도착하게 된다.
무량수전 건물은 1043년, 고려 정종 9년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할 때 지은 건축물로 창건연대가 확인된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무량수전의 주불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이다. 이 불상 또한 명품으로 흙으로 빚은 소조불(塑造佛)에 도금을 하여 전형적인 고려시대 불상으로 개성이 강하고 육체가 건장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은 거기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또한 장관이다. 일행이 무량수전 앞마당에 오른 시각은 이날 오후 5시가 가까워지고 있을 때다. 멀리 서쪽 하늘 일몰이 황금색을 띄우기 시작할 무렵이다. 그 장관을 바라다보기 위해 무량수전을 여기에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무량수전이라면 우리는 의례 그 주불이 아미타여래불로 여기지만 이곳의 주불은 석가모니불이 취하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서 석가모니불로 단정하기 쉬운 것인데, 이 불상은 무량수전 건립시기보다 200여 년 앞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 불당의 명칭만으로는 그 주불이 ‘아미타여래라’고 단정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절에 오면 언제나 그 절을 지은 사연과 설화가 있기 마련이다. 부석사 창건설화에는  의상대사를 향한 선묘낭자의 못다 한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부석(浮石)과 선묘각이 무량수전 좌우편에 있다. 20여명 무리를 지은 탐방객을 위해 어떤 해설사가 열심히 해설을 하는 틈에 끼여 잠시 경청해보기도 했다.  
무량수전 좌우편에 이 위대한 부석사의 창건설화를 간직한 부석(浮石)과 선묘낭자의 사당인 선묘각이 보였다. 부석에 얽힌 선묘의 이야기는 송나라 찬녕이 지은 「송고승전」에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의상과 원효가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원효는 깨친 바 있어 되돌아오고 의상은 당주(지금의 남양` 아산)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중국 등주(登州)에 도착해 한 신도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에 선묘라는 딸이 의상에게 반해 구혼을 했으나 의상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기에 “세세생생(世世生生) 스님께 귀명(歸命)하여 스님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소원을 하게 된다.
의상이 종남산의 지엄에게 화엄학을 배우고 돌아오는 길에 그 신도집에 다시 들러 사의를 표하고 신라를 향해가는 배를 탔다. 이때 선묘가 밖에 있다가 의상을 만나보지 못하고 의상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옷을 들고 나왔으나 배는 이미 떠났다. 선묘낭자는 옷상자를 바다에 던지고 내 몸이 용이 되어 저 배를 무사히 귀국하게 해달라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귀국 후 의상은 산천을 돌아다니며 머무를 곳을 찾던 중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사교(邪敎)의 무리 500여 명이 자리 잡고 의상의 접근을 방해하고 있었다. 항상 의상을 따라다니던 선묘는 의상의 뜻을 알아채고 허공중에 사방 1리나 되는 큰 바위로 변해 위협하자 이들이 놀라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의상은 이곳에 들어가 절을 짓고 화엄경을 강의하게 된 것이다.
지금 부석사 옆에 자그맣게 자리한 선묘각은 선묘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고, 조사당 벽화 원본을 모셔놓은 보호각 뒤로 옛 우물자리 선묘정이 있다. 선묘정을 지나 일행이 올라 올 때의 계단을 비켜 오른 편으로 난 내리막길을 돌아서 하산할 때,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저녁노을에 물들면서 장엄한 화엄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천하일경이라 놓치지 말라고 당부하던 신동숙 해설사의 충언이 떠올랐다. 재작년 올랐던 지리산 사성암 주차장에서 바라본 석양처럼 아름다운 황혼의 빛을 여기서 또 만나게 된 것이다.
아름답게 지는 저 일몰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듯 영원불멸하고 광대무변한 화엄세계 안의 아주 작은 미미(微微)한 우리 인생도 아름다운 빛을 보내는 마음으로 서로 융합하고 하나 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회원들과 함께 부석사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내리막길을 서둘러 내려왔다.

                   대구왕뽈짐 영주 동점

일행이 영주 365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대구왕뽈짐으로 유명한 영주동점 대구왕뽈짐집에 들렸다. 오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부석사 입구에서부터 선묘각까지 왕복 2km가 넘는 오르막길을 걸어서 오르고 내려왔으니 시장기를 느낄 때였다. 통통한 대구살과 곤쭈꾸미 등 해물들이 콩나물과 섞여 약간 매우면서도 맛깔나는 음식이다.
소주를 곁들여 들이키며 좌중 분위기가 달아오를 무렵,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자기가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사람을 선정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진행자 김현숙이 김호근을 지명하였다. 김호근은 다시 김숙희를, 김숙희는 이동배를 이동배는 손국복을 ````, 그렇게 지명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명하여 칭찬해주는 가운데, 회원들은 합천문협회원으로서의 소속감과 자긍심을 느끼는 진지한 프로그램을 즐겼다.  

                   소백산 희방펜션

일행이 대구뽈짐집에서 만찬을 즐기고 그날 밤 숙소로 찾아간 곳은 영주시 풍기읍 죽병로에 소재한 소백산희방펜션이었다.
이날 밤 9시를 넘겨 찾아들어간 희방펜션에서는 예기치 못한 이벤트 행사가 벌어졌다. 방 배치가 끝나고 남자들끼리 시국토론이 한창 전개되고 있을 때, 열 살 귀여운 어린이 서영이와 민교를 앞세우고 옆방에서 먹을 것을 가지고 여자 회원들이 들이닥쳤다. 보영이가 합천문협에 입회한지 1년이 됐다고 돌잔치를 함께 벌이자는 것이다. 가짜 케익에 불을 붙이고 우리는 모두 생일축하 노래를 합창하였다. 서영이와 민교가 '뿜뿜뿜'과 이어서 '안되나용' 등의 흥겨운 어린이 춤에 맞춰 박수치며 전 회원들이 한 때 흥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펜션은 아름다운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소백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잇는 소백산은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한 국립공원이다. 상월봉,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한복의 치맛자락처럼 부드러움과 세련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높이 28m의 물줄기가 장관인 희방폭포와 그 인근에 천년고찰 희방사와 초암사, 비로사가 자리한 곳이다.
주세붕 선생이 이곳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산삼의 씨앗을 받아 인삼 재배에 성공한 곳이 또한 소백산이다.
희방사는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두운 조사가 소백산 남쪽 기슭 해발고도 850m에 창건한 사찰로, 1568년(선조 1)에 새긴 월인석보 1'2권의 판목을 보존하고 있다가  6'25전쟁 때 훈민정음 원판, 월인석보 판목 등과 함께 소실됐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1459년(세조 5)에 세조가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본문으로 하고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설명부분으로 하여 합편한 책이다.
국망봉 남쪽 계곡 아래에 자리한 초암사는 의상대사가 세운 조계종 사찰이었다. 의상대사가 부석사 터전을 보러 다닐 때 초막을 짓고 수도하며 임시 기거하던 곳이고, 부석사를 지은 후 이곳에 다시 초암사를 지었는데, 6,25전쟁 중에 파괴되고 지금 이곳에는 삼층석탑과 부도만이 남아 있다. 왜경이 약탈해 조선총독부에 기증했던 세계적인 명품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흑석사에 있는 국보 제282호 '목조아미타불좌상'도 이곳 초암사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렇듯 많은 국보급 문화재가 한 때 보관되어 있던 곳, 산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아름답고 유서 깊은 소백산을 바로 코앞에서 들리지 못하고, 일행은 이튿날 새벽 6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어두운 새벽안개를 가르며, 동이 트기 전에 서둘러 하산하고 말았으니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또 있으랴,
희방펜션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풍기온천리조트에서 아침목욕을 하고 소백산 마룻길을 경유 풍기읍 수철리 희방 삼거리에 있는 폭포숯불갈비집에 들려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이날 아침 9시경 다음 코스인 영덕으로 향해 출발하였다.

                   괴시(槐市)마을

일행이 소백산 오름길에 소재한 희방삼거리의 폭포숯불갈비집에서 출발하여 청송휴게소에 잠시 들렸다가 1시간 30여분 달려 도착한 곳이 경북 영덕군 영해면에 위치한  괴시(槐市)마을이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탄생지로 조선시대 전통가옥들로 둘러싸인 고색창연한 마을, 괴시리가 옛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원래 마을 이름이 호지촌(濠池村)이었는데, 목은이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자신의 고향이 중국의 괴시(槐市)와 비슷하다 하여 괴시로 부르면서 명칭이 괴시마을로 굳어졌다. 아직까지 호지골·호지마을·호지촌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 전통가옥들은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남아 있는 고택들은 모두 200여 년 전에 지어진 것들로, 'ㅁ'자형 구조이다. 밖에서 보면 뜰을 마주보고 서 있는 사랑채 뒤편으로 안채를 살짝 숨겨 안팎을 완전히 분리하는 사대부가의 건축 양식이다. 30여 호의 가옥 가운데 괴정(槐亭), 구계댁(邱溪宅), 주곡댁(注谷宅), 물소와서당(勿小窩書堂), 천전댁 등 국가 및 도 문화재자료만도 14점이나 된다.
일행이 목은 이색의 기념관을 향해 가는 길 도중에 천전댁에 들렸다. 이 집은 남유용(南有鏞)이라는 사람이 1876년에 건립한 건물이다. 1876년은 일본에 의해 강제로 조선과 통상조약이 맺어진 해이다. 고종과 더불어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으로 서양세력을 배척하며 외세와 대립하던 시절이었다. 이 마을의 가옥형태가 말해 주듯 우리의 전통을 지키려는 수구적(守舊的), 고집스런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집의 건축구조를 보면 안채와 사랑채, 중문간채가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손님을 맞는 사랑채가 중문의 우측으로 중문을 연결하여 건물을 약간 높게 세운 팔작지붕으로 꾸며져 있으며, 독립된 건물처럼 보이고, 사랑채 추녀의 곡선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집은 웃대 며느님이 안동 임하면 의성김씨 집성촌인 내압 천전마을에서 시집을 왔기 때문에 천전댁이라 불리고 있다.
일행이 이 집에 들어가 잠시 머물렀다. 회원들이 재기차기에 여념이 없을 때 이 집안의 이모저모를 살피다가 천정 들보에 흰 창호지에 싸인 생선 한 마리가 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집이 분명 성주신을 모시고 있음이 분명하다. 성주신은 원래 집 건물의 중요한 대들보에 산다고 전해진다. 이 대들보가 있는 마루는 제사의 의례가 행해지는 신성한 공간이다.
사랑채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랑채에서 보이는 선반이나 시렁, 벽장, 다락 등은 조선 후기의 가옥에서만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현대 서양문물의 가옥 구조에서 살다가 우리의 흔하지 않은 전통가옥들, 그 중에서도 그 진수(眞髓)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임원진의 배려(配慮)에 진정한 고마움을 느낀다.
이집 구석구석을 한 바퀴 돌아 앞마당에 들어서니 일행이 잔디밭에서 재기차기에 여념이 없다. 각자 옛날 어릴 때의 재기차기 재량(才量)을 발휘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볼만하다. 나도 어릴 때 오른다리로 열 개 이상 차는 기량이 있었는데, 이날은 겨우 3개를 차고 말았으니, 세월의 덧없음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팀을 편성해 내기 채기차기에 이겼으면서도 손회장께서 커피값을 모두 계산을 하니 양팀 모두 박수를 치며 환한 웃음으로 이 집 대문을 나섰다. 일행은 목적지로 삼은 목은 선생의 기념관을 향해 다시 발걸음올 옮겼다.
일행이 가는 길목 서쪽으로 드넓은 영해평야가 펼쳐져 있고, 그 뒤편으로는 낙동정백(洛東正脈)의 크고 작은 산이 병풍처럼 솟아 있으며, 동으로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창해(滄海)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고려 말 정치가, 대학자이며 대문호였던 목은 이색 선생의 기념관이다.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 시호는 문정(文靖), 1328년 이곳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무가정(無價亭)에서 태어났으며, 20세에 부친 가정공이 머물던 원나라에 유학하였다.
귀국 후 2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숙옹부승(肅雍府丞)을 시작으로 30세에 우간의대부, 40세에는 판개성부사 및 성균관의 대사성을 겸직하였고, 47세에는 왕명으로 영덕군 창수면 출신인 나옹선사의 비문을 찬(撰)하였다. 64세에는 벽상공신삼중대광 한산부원군(壁上功臣三重大匡 漢山府院君)에 영예문춘추관사(領藝文春秋館事)에 올랐다.
65세 때 이성계에 의하여 고려가 망하였으나 불사이군(不事二君) 고려조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으며, 여주의 남한강 아래 연자탄(燕子灘)에서 세상을 떠났다.
6000여 수에 이르는 방대한 시문을 남긴 대문호일 뿐만 아니라, 성리학을 진작시킨 대학자이신 선생과 이 지방의 인연을 숭앙하고자 선생의 자취가 남은 이곳 유허(遺墟)에 유적지를 조성하였다.
선생은 이곳에서 한 시절을 보내며 망해버린 고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달랬던 몇 편의 시가 있는데, 여기에 그 중 두 편만 소개한다.

               영해 동녘바다 해돋이
          외가댁은 적막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데
          풍경은 예로부터 사람들 입에 올랐었네
          동녘 바다 향하여 돋는 해를 보려하니
          갑자기 슬퍼 두 눈이 먼저 캄캄해지누나  

          황량한 마을서 하룻밤 단란하게 묵으면서
          젊은 시절 회포를 자세히 못 논해 보았는데
          회상컨대 몇 년 새에 선배들은 다 떠났고
          아침까지 지저귀더니 어느덧 또 황혼일세

             우국가(憂國歌)
         백설(白雪)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梅花)난
         어늬 곳듸 피엿난고
         석양(夕陽)에 홀노셔셔
         갈 곳 몰나 하노라

고색창연한 전통 마을 괴시리 천전댁과 목은 선생의 기념관 답사를 마치고 일행이 다시 차에 올라 출발하여 마을 어귀를 돌아 나오고 있을 때였다. 김숙희 회장이 현금과 신분증, 신용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목은 기념관 출입구 방명록 코너에 두고 온 것 같다고 말하였다. 이때 유미, 보영이, 미화, 현숙이, 호근이 다섯 사람이 찾아보자고 자발적으로 서둘러 지갑을 찾아 나섰다. 거기서 목은기념관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10여분 거리다. 그러나 나는 지갑을 놓고 온 곳이 사람의 왕래가 많은 기념관 출입구이고, 일행이 그곳을 나온 시간도 30여분이 지났기 때문에 그들이 그곳에 가서 그 지갑을 찾아온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만면에 미소를 짓고 덩실덩실 춤추며 버스에 다가오고 있었다. 지갑을 찾았다는 징후가 분명하다. 반가운 마음에 차 안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나도 내가 노인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고 버스 밖으로 나가 그들을 환호하며 따라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더 감동스런 일은 김회장이 그 지갑 안에 있었던 돈을 모두 꺼내어 지갑을 찾아온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들의 정성을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도 돋보여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현상은 합천문협회원들 선후배 상호간 평소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가운데 다져진 존경과 믿음의 발로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합천문협 문학기행사에 기리 기억될 일이었다.

                    영덕풍력발전단지

겨울 여정으로는 어떤 곳보다 바다가 풍성하다. 겨울 바다 중 동해안은 다른 곳보다 다양한 구색을 갖추고 있다. 한겨울에도 매섭지 않은 해풍과 그 해풍에 젖은 선홍색 동백꽃은 양귀비꽃보다 더 아름답고, 싱그럽다. 양력 정월 초순의 장쾌한 일출과 겨울바다 테마여행은 도시소음과 미세먼지에 찌든 도시민을 유혹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많이 늘어나게 한다.
합천문협이 이러한 추세를 몰아 문학기행에 영덕해변가를 선정했음이다.
이날 일행이 괴시마을을 떠나 다음 코스로 방문한 곳이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에 소재한 영덕풍력발전단지다.
15년 전 발생한 이곳의 대형 산불로 송림이 울창하던 야산이 한 순간 황무지로 변해 그 상처를 딛고 세워진 것이 영덕풍력발전단지다.
그 폐허 바닷가 절벽에 영덕 사람들이 무인등대를 세워 해맞이 공원을 일궜다. 이어서 2005년 4월 버려진 야산에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는 풍력발전 단지를 건립한 것이다. 풍력발전기의 내부구조는 몸체가 강철이고, 날개는 복합탄소합금으로 만들어져 날개의 탄력성으로 바람이 초속 10m 이상 불면, 약간 휘어질 뿐 부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바람이 초속 3m이상 불면 움직이기 시작하고, 초속 13m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돌지만, 초속 20m가 넘으면 저절로 멎는다고 한다.
그렇게 세운 영덕의 풍력발전단지가 예산을 투입한 만큼 효율성이 없어 애물단지로 남았다고 한다. 국민의 아까운 혈세가 세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덕신재생에너지 전시관

일행이 영덕풍력발전단지를 답사하고 다음 코스로 들린 곳은 영덕풍력발전단지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는'영덕신재생에너지 전시관'이다. 자연의 자원인 태양, 바람, 물, 지열, 바이오매스 등을 이용한 신재생 에너지의 원리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전시관이었다. 창포 족욕탕, 태양광을 이용한 프리즘 체험, 태양광으로 움직이는 오르골 등 자연의 원리가 직접 적용된 체험 전시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같은 ‘신 재생에너지의 세계적 조류’에 부응해 국내에서 추진하는 자연 에너지의 자립도를 높이는 ‘그린홈 캠페인(Green home campaign)’이 국내에서 지금 한창 벌어지고 있다.
그린홈의 일차적인 에너지원은 주방이나 욕실에서 버려지는 폐열과 조명등, 가전용품에서 방출되는 열들을 모은 열에너지를 사용하여 환기구를 통해 실내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데워 난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려면 건물의 단열시설인 벽체와 지붕, 바닥의 두께를 충분히 해서 열손실을 막아야 한다는 것. 모자란 에너지는 가정용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해 추가로 얻고, 지열 냉난방 시스템이나 소규모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해 난방 에너지도 확보할 수 있고,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까지 ‘그린홈’을 100만호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태양광집열판, 태양열집열기, 지열냉난방시설, 소형풍력발전기, 목재펠릿보일러 등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하려는 가정에 대해 설치비의 일부를 무상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우리집도 그린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린홈’이 많아질수록 에너지자원도 절약되고 지구도 오래도록 아름답게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근래들어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지진과 해일, 화산폭발 같은 잦은 재난도 그것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재난이 아니고 세계 각국의 분별없는 화석연료 사용 때문이다. 빈번히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이 때문이다.
나는 영덕신재생에너지 전시관을 나오면서 이런 중요한 생활정보를 제공해준 영덕군청의 정성에 새삼 고마운 마음을 느끼면서 차에 올라 다음 코스인 영덕군 강구 해변가를 향해 달려갔다.

                     강구대구횟집

일행이 이날 다음 코스로 찾아간 곳은 영덕군 강구면 강구대게길의 대구횟집이었다.
강구버스터미널과 영덕대게거리를 경유하여 강구공영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사람과 차량행렬로 붐벼 20여분 거북이걸음을 지속했다. 동해바다가 넓게 펼쳐져 보이는 공영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우고 일행은 지하로 통하는 턴넬을 지나 지하 6번 출구에 있는 대구횟집에 들린 시각은 이날 오후 3시경이었다.
이 집은 동해를 바로 옆에서 한눈에 관망할 수 있게 설계되어 배들의 행선은 물론 파란 바다위의 갈매기들의 노니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어서 뭍에서 온 여객들에게는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정성껏 준비하여 들여오는 쯔기다시(つき-だし)와 대게 및 회(膾) 등 지금까지 먹었던 바닷가 횟집 여느 식당보다 더 맛있고 풍요로운 그야말로 진해산미(珍海山味)를 음미할 수 있었다.
선보영의 아이들 박민교와 이서형이 진귀한 이 음식들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계속 들여오는 음식에 놀라며 음식값을 걱정하는 모습이 앙징스럽다. 어른을 닮아가는 아이들의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비추는 거울임을 새삼 느낀다.
이날 그 시간 우리 회원들은 2018년 합천문협의 긴 여정에서 싸인 여독을 풀면서  이번 여행에서 느꼈던 소감을 돌아가며 발표하기도 하였다. 술 한 잔에 평소 못한 말도 주고받으며, 정담은 늘어나 그야말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합천문협의 한 해를 결산하는 뜻있고 보람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귀로의 버스 안에서

강구의 대구횟집에서 나온 일행이 귀로의 버스에 오르기 전 해맞이의 명소 삼사해상공원(三思海上公園)과 인접한 강구시장 일대를 둘러보았다. 해질무렵의 시장이지만  해산물을 사려는 손님들이 줄지어 붐비고 있었고, 주변 오디오 판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 멜로디가 부둣가 야시장의 저녁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아들에게 맛보이려고 최병태 부회장이 싱싱한 생선 만원어치를 사서 비닐봉지를 받아 쥐는 모습에서 아들 사랑의 정이 가득 묻어 있음을 본다. 젊은 아베크족들이 손에 손잡고 소요하는 모습을 옆으로 보며, 공원일대를 한 바퀴 돌아 차에 오른 시각은 이날 오후 6시 20분, 1박 2일간의 모든 여정이 끝나는 시각이었다. 해마다 한 차례씩 일상을 떠나 연말에 시행하는 문학기행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문학기행에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 평소 나누지 못했던  우리가 귀담아 듣고 오래도록 기억하며 우리의 실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잘못된 일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 용서하는 사람 만큼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자는 없다. 나아가 대의(大義)를 위해서 때로는 상대에게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 이와 같은 말들은 대인관계에서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며 오랜 인생을 살아오면서 덕(德)을 쌓은 경륜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암울한 시대상을 묘사한 인력거꾼의 생활을 그려낸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스토리, 굶주린 조카 아이들이 가엾어 빵 몇 개를 훔친 것이 죄가 되어 평생을 쫓겨 다니며 뒤쫓던 자벨경감을 용서해준 잔발장의 거룩한 <레미저러블> 이야기, 합천 율곡 출신 주세붕 선생의 소수서원 창건 이야기, 사바세계와 도솔천이 하나로 연결된 화엄세계임을 나타낸 부석사의 건축구조의 의미 등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경북 영주지역을 답사하면서 그야말로 많은 것을 배우고 감명을 받은 기리 기억될 기념비적인 문학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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