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복숭아
이 동 실
친정어머니는 노인병원에 계신다. 어머니가 병원으로 가시던 날에 비가 내렸다. 올케가 시집오면서 지금까지 긴 세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삼 년 전부터 노인성 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까지 당연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아 형제들이 의논했던 것이다.
노인병원에 모시면서 ‘엄마 한 달에 한 번은 찾아뵐게요.’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오빠가 곁에 있고 다른 형제들이 찾아뵙는다는 핑계로 나는 자주 찾아 뵙지를 못했다. 모처럼 시간을 내고 세 시간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달리는 가슴 한구석엔 마른 낙엽 소리가 바스락거린다.
병실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달팽이 같이 돌돌 말려 들어가는 꼬부랑 허리를 어쩌지 못해 가슴을 허벅지에 붙이고 양팔로 양다리를 감싼 채 오도카니 앉아 계셨다. 무릎을 굽히고 몸을 낮춰 엄마와 눈높이를 같이하고 가만히 손을 잡았다. 물기 없이 말라가는 파삭한 피부가 차갑게 닿는다. 물끄러미 쳐다보시던 어머니도 내 손을 잡고 가물가물해가는 기억의 파편 조각을 맞추듯 눈을 껌뻑이신다. 손바닥을 문질러 어머니의 굽은 등에다 대고 온기를 불어넣듯 슬슬 쓰다듬고, 갓난쟁이 다리 주무르듯 엄지손가락으로 무릎을 살살 어루만지니 어머니 다리가 서서히 펴졌다. 살갗에서 나는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른 미소가 엷게 퍼지는 엄마 볼에 입맞춤을 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볼을 내주는 엄마의 체온을 따라 나는 유년의 뜰로 들어섰다.
우리 집 텃밭에는 오래된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울타리 밖에는 동네우물이 있었는데 나무는 우물가 그늘도 만들어 주며 맛도 좋아 동네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나도 복숭이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침녘에 나가보면 이미 누군가의 손을 타 버렸던 그 이듬해. 풋것은 배가 아프다는 엄마의 말씀을 귓등으로 넘기고 복숭아를 땄다. 딱딱한 복숭을 우물에 뽀독뽀독 씻어 맛있게 먹고는 입을 쓰윽 닦았다. 어둠이 마을로 내려올 무렵이 되자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더니 복통이 일어났다. 한바탕 소동을 벌여 식구들 잠을 다 깨우고서 나는 엄마 무릎에 누웠다.
어머니 손이 원을 그리며 내 배를 훑고 지나갔다. ‘엄마 손은 약손......’ 꿈속처럼 어머니 목소리가 간간히 들렸는데 눈을 뜨니 맑은 햇살이 비치는 내 머리맡에 따끈한 미음이 놓여 있었다. 나는 또 “엄마! 엄마!”를 불러댔다. 소여물 끓여가며 아침 준비하느라 바쁘셨을 엄마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 내 손이 차 울라'시며 내 배를 만져 사랑의 온기를 채워 주시던 어머니......
“야야 왜 말을 안 하노. 언제 왔노?”라시며 나를 깨우시는 어머니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오늘은 정신이 맑은가 싶었더니 금세 미간에 근심을 담아낸다. “후이 오면 추블라, 군불 마이 여 났나?”라신다. 훈이는 오빠의 큰 아들로 서른다섯 살이다. 장손인 손자 훈이가 추울까 봐 방 따뜻하게 해 두었냐? 는 것이다. 몇 해 전에 결혼해서 얘가 둘이나 되는데 지금도 어린애 인양 기다리며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연년생 동생을 둔 장손이 안쓰러워 당신 빈 젖 물려가며 금지옥엽 아끼시더니 치매를 앓고 있는 지금도 그 사랑은 식을 줄을 모른다.
휠체어에 어머니를 태우고 세면장으로 향하는 내게 “나 집에 좀 데려다 다고 집에 가고 싶어 죽을 것만 같다.”시며 애원을 한다. 이토록 정신을 놓지 않으려 꼭 쥐고 계시는 엄마를 내가 치매라고 몰아세우고 있는 듯하다. 차 오르는 슬픔이 우리 모녀의 얼굴에 범벅이 되는 시간이다.
백설이 내린 듯 하얗고 결 곱던 어머니의 머리도 감겨드리고, 옷도 새것으로 갈아 입혀드렸다. 내 눈엔 어머니가 달덩이 같다. 어릴 적 명절이 다가오면 가마솥에 물을 끓여 고무 통에다 우리들을 줄줄이 목욕시켜 내고 이불속에 묻어둔 내복을 갈아 입혀 주시던 엄마도 이런 맘이셨을 게다. 식사를 맛있게 드시고 잠드신 어머니께 이불을 덮어드렸다.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어머니의 고단했던 시간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부모는 열 자식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부모도 못 모신다는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지금 한창 복숭이 익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 안 사실인데 어머니도 복숭아를 좋아하셨다. 다음 어머니를 찾아 뵐 때는 잘 익은 복숭을 대접해 드려야겠다. 복숭 먹고 꾀병 부리던 내 어린 시절도 혹 기억해 주시길 기대하련다.
변해가는 시장인심
이동실
퇴근하는 길에 시장으로 갔다. 모처럼 무밥을 먹고 싶어서다. 무에 콩나물을 얹으면 금상첨화. 콩나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께 말했다.
“할머니 콩나물 천 원어치 주세요.”
“요새 천 원어치가 어딨노?”
다른 사람 콩나물을 담던 할머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젊은 것이 콩나물 값이나 깎아대는 속 좁은 사람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천원 가지고 달달 떠는 인색한 사람으로 비친 듯해서다.
먼저 온 아주머니가 콩나물 봉지를 받아 들고 “나도 한 움큼만 있으면 되는데, 천 원어치는 안 판다 카네요.”라고 하는걸 보면 그녀도 나처럼 핀잔을 받은 모양이다. “그럼 이 천 원어치 주세요.”라는 내 말에도 퉁명스럽게 콩나물만 건네주는 할머니의 인상이 어기차게 느껴지며 며칠 전에 있었던 일과 오버랩 되며 펼쳐졌다.
할머니 한 분이 길에 앉아 치과로 가던 나를 불러 세웠다. 씨앗 땅콩 한 되를 팔러 나왔다며 사라고 했다. 얼마나 어려우면 씨앗으로 두었던 땅콩을 가지고 나오나 싶어 할머니가 달라는 대로 주고 샀다.
“새댁 고마워요!”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치과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할머니가 딱 한 되뿐이라던 땅콩을 길바닥에 놓아두고 똑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게 아닌가. 싸늘한 한줄기 바람이 등줄기를 스쳐갔다.
언제부터 할머니들이 이토록 야박해 졌을까. 죽살이 판을 헤치고 나왔던 할미도 양심과 인심은 있지 않았던가. 어머니처럼 신토불이 음식을 만드는 방법과 조리법도 인정스럽게 일러주며 때론 덤으로 다른 것을 올려 주기도 했다. 그들이 베풀어 주던 푸근함에 필요치 않아도 떨이를 사주며 단골도 더러 있었다. 세상살이가 얼마나 어려우면 저러나 싶기까지 했다.
나만 느끼는 게 아닌가보다. 요즘 시장할머니들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서글프다. 살아온 그분들의 심성이 강퍅(剛愎)해지는 것은 그분들의 잘못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무엇이 저토록 만들었을까. 그렇다고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기도 마뜩치 않다. 누리고 살아도 될, 이제는 충분히 그래야만 될 하얀 세월을 머리에 이고서도 마음마저 녹록치 않은 그들에게서 문득 현실의 책임까지 느껴졌다.
<눈물의 사과>라는 글이 생각이 났다.
프랑스의 소년사관학교 앞 과일가게에는 사과를 사 먹는 학생들로 붐볐다. 그런데 돈이 없어 혼자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서서 바라만 보던 학생에게 그 가게 주인은 아이들이 없을 때 사과를 챙겨주곤 했다. 어느 날 프랑스군 장교 한 사람이 할머니에게 와서 사과를 사서 먹으며 말했다.
“할머니! 사과 맛이 참 좋습니다.”
“벌써 30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나폴레옹 황제께서도 소년사관학교 시절에 우리 가게에서 가끔 사과를 사서 그렇게 맛있게 먹었지.
“할머니, 그분은 가난해서 할머니께서 그냥 사과를 주셨다고 하던데요.”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그건 군인 양반이 잘못 안거요. 그 학생은 돈을 꼭 내고 사 먹었지 한 번도 그냥 얻어먹은 일은 없었어요.”
“지금도 그 소년의 얼굴을 기억하나요?”
그 말에 할머니는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추억을 더듬는 듯 했고, 사과를 먹던 장교는 할머니의 두 손을 살포시 감싸 쥐며 말했다.
“할머니! 제가 바로 30년 전에 할머니께서 주신 사과를 맛있게 먹었던 그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입니다. 그때 할머니께서 주시던 사과를 먹으면서 저는 세상의 따스함을 느꼈고 언젠가는 은혜를 갚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었습니다.” 라며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가 가득 든 상자를 할머니께 드렸고,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뜨거웠던 기억이다.
타박타박 걷는 내게 환청이 들리는 듯 했다.
‘씨앗으로 둔 땅콩...’
‘씨앗으로 둔 땅콩...’
그것은 다시금 싹 틔워야 한다는 이 시대의 소명 같은 아우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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