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꿈
소 민 호
구멍이 숭숭 뚫린 초가지붕에서는 비가 샜습니다.
사람이 떠난 집은 지붕이 뚫리고 벽이 허물어지면서 벌레들이 살았습니다. 들쥐가 들락거리고 뱀들도 소리 없이 혀를 날름거렸습니다.
그나마 노래하는 귀뚜라미가 있고, 거미줄에 매달려 그네를 타는 이슬이 있어서 힘이 났습니다.
지붕에서 피어오르는 두엄 냄새를 맡으며 나는 또 꿈을 꾸었습니다. 당연히 지금보다 행복한 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웅성웅성’ 소리가 들리더니 집 마당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섰습니다. 무너진 담과 벽을 걷어낸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 서까래를 내렸습니다.
나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백 년이 넘는 세월동안 집이라는 이름으로 지냈는데……!’
산에 소나무로 살던 옛날이 떠올랐습니다.
소나무 숲은 겨울에도 초록 이파리를 흔들며 눈보라를 거뜬히 이겨냈습니다.
굵고 곧은 나무들은 하나 둘 사라졌습니다. 큰 기와집 기둥이나 대들보 감으로 숲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나도 기둥이나 대들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하늘을 쳐다보고 중얼거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무들은 웃었습니다. 나는 곧고 굵은 나무가 아니었으니까요.
“넌 땔감밖에 안 돼!”
대 놓고 타박을 하는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흥 땔감이면 어때. 나를 태워서 세상을 따듯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남들이 뭐라고 하던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한 꿈을 놓지 않고 꼭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세월이 지나면서 굽은 몸은 펴지지 않았지만 둥치는 씨름선수 다리통보다 더 굵어졌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밑동이 잘리는 아픔 때문에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껍질이 벗겨진 채 이곳 집터에 누워있었습니다. 내 옆에는 굵고 가는 나무들도 쌓여 있었습니다.
모여 있던 나무들은 각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가는 나무들은 서까래가 되고 굵은 나무들은 기둥이 되거나 들보가 되었습니다.
‘구부러지고 뒤틀린 내가 기둥이 되면 어떨까?’
나는 기둥이 될 나무들과 내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 굽은 나무는 어디 쓰려고……?”
“대목이 거기 그냥 두라고 하구먼.”
“이렇게 굽고 뒤틀린 나무를 왜 가져왔는지 모르겠네.”
목수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나도 목수들처럼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굵은 나무들은 땅을 디디고 기둥이 되기 위해 꼿꼿하게 서 있었습니다. 기둥보다 가는 나무들은 들보가 되어 기둥들을 붙들고 있었고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기둥과 들보들이 굳건하게 제 자리를 잡았을 때 쯤 기둥 사이에 음식상이 차려졌습니다. 사람들도 정갈한 차림으로 모였습니다.
붓을 든 사람은 먹물을 듬뿍 찍어서 광목으로 묶은 내 몸에 글을 썼습니다.
“음, 잘 썼구먼!”
대목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시작은 용(龍)자를 썼고 끝은 귀(龜)자를 써서 하늘의 도리를 어기지 않고 집을 지었으니, 불이 나지 않도록 해달라는 주문과 집지은 날짜를 썼습니다.”
글을 쓴 사람이 붓을 놓으며 설명했습니다.
“자, 제를 지냅시다.”
대목 말에 사람들은 차례로 내 앞에 절을 했습니다.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절을 하다니요! 온 몸이 뻐근해지면서 겁이 났습니다.
내게 절을 하는 사람들의 눈 속에 간절함이 보였거든요. 꿈도 비쳤고요.
“상량이요!”
생각에 잠겼을 때 대목이 목청을 가다듬어 소리쳤습니다.
“상량이요!”
모인 사람들도 대목을 따라 소리쳤습니다.
이어서 들보를 디디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내 몸에 묶인 무명천을 잡아당겨 끌어올렸습니다.
그렇게 지붕 가까이 자리 잡은 나는 아래로는 기둥과 들보들을 붙들고 위로는 서까래를 받치는 대들보가 되었습니다.
“오호, 대들보가 아주 특별해 보이는구먼!”
“용을 닮은 게 참으로 멋진 대들보일세!”
“역시 대목의 눈은 달라. 어떻게 이런 나무를 대들보로 쓸 생각을 했을까?”
사람들은 나를 올려다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어서 서까래가 내 위에 걸쳐졌습니다. 빙 돌아가며 지붕을 떠받칠 서까래들이 내 몸에 기대서 부챗살처럼 펼쳐졌습니다.
“우리는 비록 작은 초가집이지만 집이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함께 하자!”
“우리도 대들보와 같은 생각이야!”
기둥과 들보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좀 미안하네!”
서까래들이 힘없이 말했습니다.
“아니야. 너희들 때문에 비를 안 맞잖아.”
비를 맞으면 우리는 금세 썩는다는 내 말에 서까래들이 힘을 냈습니다.
이어서 지붕이 비를 가리고 벽이 바람을 막자 집 안에는 따듯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온기 따라 사람들도 들어와서 살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즐겁고 슬픈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초가집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서까래 다 내렸습니다!”
고함소리에 옛날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대들보를 내리고 기둥만 뽑으면 끝이군.”
땅으로 내려온 나는 기둥들과 함께 차를 타고 한적한 곳에 도착했습니다. 거기는 먼저 온 기둥과 서까래들이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일찍 온 나무들은 안타깝다고 하며 혀를 찼습니다. 같은 처지이면서도 먼저 온 여유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그 나무들에게 어떻게 되는 지 물어보았습니다. 대부분은 땔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누군가를 따듯하게 데워주는 것도 참 좋은 일이야!”
“……!”
모인 나무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나는 불꽃이 피어오르는 내 앞에 사람들이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처럼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당에 들어선 짐차에서 몸이 구부정하고 다리를 저는 아저씨가 내렸습니다.
주인은 반갑게 맞이하며 우리가 있는 곳으로 아저씨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저씨는 나무들을 뒤적이며 꼼꼼히 살피더니 나를 들어냈습니다.
“아이쿠, 그 나무는 너무 굽어서……?”
주인은 그 아저씨 몸과 나를 번갈아 힐끔거리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이게 딱 좋네요.”
아저씨는 나를 들어냈습니다.
부러워하는 기둥들과 서까래들을 보며 나는 미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어떤 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행복하겠지요.
흔들리는 차를 타고 온 곳은 나무로 무엇을 만드는 공방이었습니다. 톱에 잘린 나무들, 때 묻은 나무들이 어지럽게 늘려있었습니다.
나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아저씨 손에 몸을 맡겼습니다.
“참 잘 말랐군!”
아저씨는 나를 어루만지더니 힘겹게 들어서 커다란 작업대 위에 올렸습니다. 겁이 덜컥 났습니다. 이런 작업대에 올려놓은 걸 보면 자르고 깎을 게 뻔했거든요.
껍질을 벗기고 자른 뒤 자귀와 도끼로 다듬어 대들보로 만들 때가 떠올라 온몸이 오싹했습니다.
그 때 기계소리가 들렸습니다.
온몸을 감싼 아저씨는 마스크와 두툼한 안경으로 얼굴까지 다 가린 채 쇠솔이 돌아가는 그라인더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보기만 해도 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아저씨는 쇠솔로 내 몸에 때를 벗겨냈습니다. 공방 안은 온통 먼지투성이였습니다.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거무튀튀한 먼지 속에 추억으로 간직했던 숲이 펼쳐졌습니다. 산새들이 날고 철마다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가 하면, 곧고 큰 나무들이 잘려나가는 아픔도 보였습니다.
초가집 대들보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바람과 눈비를 막아주던 모습도, 집 안에 살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슬픔도 풀풀 날아나갔습니다.
나는 가물거리는 정신을 온몸으로 붙들고 버텼습니다. 정신을 잃으면 소중한 추억들이 멀리 도망갈 것만 같았거든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내 몸을 자르고 파는 바람에 나는 또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슴푸레 들리던 기계소리마저 들리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릅니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세상이 모두 달라져 있었습니다.
낯선 집 거실 천장에 그네처럼 매달려 대롱거렸습니다.
나는 집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내 아래에는 식탁과 의자가 단아하게 놓여 있었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웃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아저씨 모습도 보였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따라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때 묻은 대들보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처음 껍질을 벗었던 몸빛이었습니다.
“으흑, 이게 뭐야?”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래쪽은 구유처럼 깊은 홈이 파였고, 홈 속에는 작은 전구 여러 개가 한 줄로 박혀있는 등이었습니다.
‘오-, 내가 식탁을 밝히는 등이 됐어!’
그때 휠체어를 탄 소년이 나타났습니다.
“어떠니?”
아저씨가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소년의 휠체어를 밀어주었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소년은 자신의 다리를 만지며 구부정한 내 몸과 불빛을 쳐다보았습니다.
“아, 멋진 등이네요. 구부정하니까 더 멋이 있어요!”
어두웠던 소년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소년의 엄마는 말없이 소년을 꼭 안았습니다.
이어서 소년의 웃음소리와 내 불빛이 집안을 또각또각 걸어 다녔습니다.
그 뒤를 따라 내 꿈도 멈추지 않고 자박자박 걸었습니다.
약력: o. 동화문학 신인상에 동화 <바보바위> 당선
o. 동화집 ≪자맥질≫ 등 여러 권
o. 이주홍아동문학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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