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동] 시인의 안테나와 오늘의 말
거미란 놈이 으쓱한 곳에 줄을 잔뜩 늘어놓고 있다가 그것을 미처 못 보거나 분간을 못하고 날던 파리나 모기 혹은 잠자리 같은 먹거리가 걸리면 얼른 접근해서 다시 몸뚱이에서 줄을 칭칭 감은 다음에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다.
거미줄이란 원체 가는데다가 그것은 또 찐득거리는 성질이 있고, 광선이라도 비칠 때면 몰라도 하도 교묘하게 짜 놓은 그물인지라 눈에 잘 안 띌 때가 많다. 이러니 날개만 믿고 사는 그 작은 것들은 함정에 빠질밖에 없다.
거미가 줄을 다 쳐 놓은 다음에 멀찌감치 숨어서 안테나에 무슨 신호가 있나 하고 귀를 기울이거나 어떤 충격이 줄에 있나 없나를 살피는 모양이란 상상만 해도 가히 심각한 것이다. 고리대금을 하는 늙은이의 눈보다도 예리한 눈을 하고 있는 거미. 지독한 놈이다. 그 중에서도 왕거미란 놈은 얼마나 날쌘가. 그놈이 도망가는 게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다.
시인은 거미같이 장애물 그물을 치는 건 아니지만 안테나는 있다. 있지만 보이지 않는 안테나인 것이다. 그런데 이 안테나는 자꾸 훈련해서 잘 가꾸면 성능이 좋아지지만 돌보지 않고 방치해 두면 녹이 슬어서 못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늘 긴장이 필요하다. 무엇이고 걸려오는, 즉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안테나를 유지하자니 바짝 마를 만큼의 긴장과 마음의 고양이 필요한 것이다.
거미는 당장 먹을 것 때문에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기다리지만 시인은 시의 빛을 붙잡기 위해 안테나에 마음의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 욕구는 시인에게 있어 거의 본능에 가깝다.
미세한 안테나에 닿는 어떤 사물이나 영상 또는 사상이란 대단히 큰 충격을 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그저 가볍게 스치고 지날 때도 있다.
충격이라든가 감동 혹은 감격이 곧바로 소재가 될 적도 있으나 말이 한 줄 두 줄 안테나에서 흘러나올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즉시 받아써 둘 필요가 있다.
영상이나 사상이 보이기는 해도 그것을 붙잡아서 하나의 독립된 물건으로 만들어 놓는 것은 말 자체이니 이 수단을 최고도로 잘 살리지 않고는 시는 안되고 마는 것이다.
말을 수단 삼아 충격이나 감격 혹은 감동을 표현은 하되 그것은 흔히 평범에 떨어지기 쉽다. 여기에는 특별한 기술도 필요하려니와 무엇보다도 정확한 말을 골라잡는 것이 최고다. 의사나 교육자, 혹은 정치가, 학자, 노동자, 화가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새롭게 느끼고 또 옳다고 공감하는 정확한 말을 써야 하는 것이다. 진짜 잘 고르지 않으면 흔해빠진 문서 따위가 되고 만다.
비슷하게 쓴다든가 말을 부풀려서 막연한 소리를 쓰는 것은 낙제다. 또 말에 장식을 가득 다는 것도 안테나가 전해 준 인스피레이션을 망가뜨리는 결과가 된다. 그러니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가.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길이란 일생 말을 고르는 데 바쳐질밖에 없다. 그리고 안테나를 분쇄해 버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덤벼드는 그 모든 적과 싸우며 항상 깨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또 좋은 안테나를 가진 시인은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리듬도 있고 격조도 있는 물건을 만들기 마련이다.
이런 이치를 잘 알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이렇다할 것을 못 만들고 마냥 긴장해서 사는 게 시인의 모습인가 하니 그만 힘이 빠지고 만다.
어느 날 나의 가느다란 안테나에 걸려온 신호는 북녘 내 고향집이었다. 그 중에서도 느릅나무, 이제는 아름드리로 자라 하늘을 가릴 그 나무, 그것이 사라지지 않고 서서 내 마음의 풍경을 고요한 애 수 속에 잠기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반갑고 또 기뻐서 곧 그에 대한 추억을 써 보고 싶었다.
그도 이제는 나이 먹은 나무요 나 역시 나이를 먹었다. 50년 동안이나 보지 못했으니 서로는 생각하는 마음이 각기 간절할밖에 없을 터이다.
안테나는 이런 말이 어떻냐는 테두리쯤은 일러 줬으나 그 모두의 말을 실어다 준 것은 아니다. 다만 감격과 감동의 중심을 에돌며 적당한 말을 고르다 보니 한 편의 시가 나왔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우선 나의 느릅나무에 대한 자그마한 보답으로서 혹은 위로로서 이것은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을 해본다.
어차피 죽은 다음에 남을 시란 한 편 있을까 혹은 두 편 있을까 한 것이 시인의 일생이라 하지 않든가. 내일에나 좀 나은 것을 써 보려고 지금은 안테나를 조금 수리하고 있는 중이다.
최병태
2003-09-20 15:03:36
시인의 길이란 일생 말을 고르는 데 바쳐질 수밖에 없다.또 그것을 분쇄하고 방해하는 외부의 모든 방해물과 싸워 얻기 위해 항상 깨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군요. 언제 한 번 내가 시어를 차용함에 있어서 이만큼 치열한 싸움을 해본 적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이제까지의 모든 작품을 폐기처분해야 마땅함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괜시리 어눌한 시를 독자 앞에 내밀어 시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독자들에게 혼란만 드린건 아닐런지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신중한 태도로 글 쓰는데 임하겠음을 약속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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