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일 뿐 얼굴이 없다
이목구비 오장육부
머리도 꼬리도 없다
휘둘러 서발 막대에 거치는 것이 없다
너는 쏜살인가
나아갈 뿐 멈춤이 없다
뒷걸음도 게걸음도
부지런도 게을음도 없다
이정표 없는 네 길엔
발자국도 없다
널 지은 창조주도
어찌하지 못하는 너
절대의 권능 쥐고
생사조차 주관한다
인정도 사정도 없고
예외도 실수도 없다
만인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닌 너
너와 나는 이인삼각
애환 함께 하였건만
어느 날 고개 돌릴 너
끝내 얼굴 없는 너
번지 없는 빈 집에
문패 달랑 걸어 놓고
온데간데 없는 너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너
그러나
천지에 꽉 차서
없는 곳이
없는 너
■ 감 상 포 인 트
―시간은 가장 위대한 만물의 스승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던가요? 그 책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화시대에 우수와 불안의 신(神)이 흙더미를 가지고 인간형상을 만들었답니다. 그랬더니 정신,영혼의 신이 나타나서 이 형상에 정신을 불어넣고는 서로 자기 것이라고 다퉜다는 겁니다. 그러자 다시 이 형상의 원료인 흙의 신도 뛰어들어 함께 소유권을 주장하다가 신(神)들의 전쟁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러나 끝내 승패가 가려지지 않아 할 수 없이 시간의 신인 새턴(saturn)을 찾아간 것입니다. 시간의 신이 판결하기를 인간형상에 100년의 시간을 줄 터이니 원래 만든 주체인 우수와 불안의 신이 100년 동안은 주재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아하, 그렇군요. 그래서 한 생애 동안 우리는 근심 걱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가 봅니다. 그 다음에 그것이 죽고나면 정신은 영혼의 신이 도로 가져가고, 육신은 그 원료인 대지의 신이 가져가되 그 이름은 흙의 명칭(humus, homo)을 따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흙으로 빚어져서 일정기간 그릇으로 존재하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타고난 것입니다.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학명으로 됐다는 인간명명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시간의 신은 신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간이고 세상 삼라만상의 운명을 지배하는 가장 위대한 신인 것이지요. 삼라만상 모두는, 아니 신들마저도 모두 다 시간의 신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 시는 이처럼 만물을 지배하고 운용해 가는 원리이자 힘으로서 작용하는 시간의 모습을 ‘시간의 얼굴’이라는 은유로 형상하여 시간의 현상과 본질을 꿰뚫어 보려한 존재론적 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고 하겠지요. 이 시는 시조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일반적인 시조의 단점 또는 한계로 운위되는 주제의 넓이와 깊이를 최대한 확보함으로써 시조의 시로서의 가능성을 최대한 확대?심화해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시조는 시조가 형식면에서 한계가 있어서 내용을 확대?심화하기 어렵다는 일반적인 편견을 얼마든지 극복해 낼 수 있는 열려 있는 장르임을 보여주는 한 실례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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