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열두 시엔 정오가 없다
모든 술집이 일제히 셔터를 내리는
자정만이 나의 열두 시다
열두 시엔 박정희 장군이 살아 있다
통행금지와 거리를 달리는 백차가 있다
시월유신의 흉흉한 그림자가
펄럭이지 않는 열두 시는 열두 시가 아니다
앵앵거리는 사이렌 소리와
계엄군의 군홧소리
내 심장은 초침보다 정확하게
하낫 둘 하낫 둘
섹스도, 걸음도, 밥먹는 것도 하낫 둘 하낫 둘
조금도 틈을 주지 않는 열두 시
세상의 모든 시계를 부숴버릴 거야
열두 시를 없애버릴 거야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버릴 거야
아 이것도 열두 시 안에 마쳐야 해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면
어김없이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시곗소리
나는 시계를 차지 않는다
열두 시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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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나는 열두 시 때문에 시계를 차지 않는다
(문학사상, 1995년 5월호)
시인이 시계를 차지 않는 것은 열두 시 때문이다.
시인에게는 정오가 아니라 자정만이 열두 시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자정이면 모든 고통과 분노
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시계는 역사를
가리키고, 이 역사는 고통과 관련된다. 자정이면
떠오르는 악몽, 그것이 시계이며 역사이며 열두
시이다. 시인이 시계를 차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ㅡ김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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