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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린 주점의 시, 청도에 새긴 시 - 오늘의 시에 대한 세 낱의 생각(권두칼럼) 김 우 창(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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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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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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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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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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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20 16:47:38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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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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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지명 시와시학 37호(2000년 봄)
제 목 흐린 주점의 시, 청도에 새긴 시 - 오늘의 시에 대한 세 낱의 생각(권두칼럼)
- 해설
김 우 창(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1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의 시가 있다.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 문학에서 리얼리즘을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리얼리티 또한 현실이 문학의 핵심이고 이 핵심에 시대적인 것이 놓여있다는 것 또는 놓여 있어야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사람이 사는 현실을 떠나서 문학이든 철학이든 다른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그의 삶의 현실은 있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이다. 다만 이러한 명제의 포괄성은 역사와 사회 더군다나 사람의 사회에 대한 어떤 기계장치로 환치될 수는 없다. 삶의 현실과 문학의 현실은 그것으로 포획할 수 있는 이상으로 복잡하다.
90년대의 한국문학의 여러 증후들은 문학이 세상과 더불어 미묘하게 바뀌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재작년에 발간된 황지우 씨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는 바뀌는 현실을 생각하게 하는 시대를 대표하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이 비평적 찬사와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시집 제목에 표현된 심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의 삶의 느낌을 집약해준다.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시인이 이와 같이 그리는 그의 미래상은 결코 낙관적 현실 인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술집에 앉아 있을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좋은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가죽부대라고 말하고 있거니와 자신의 육체가 인간의 능동적 의지가 사라진 물건이 되어 가는 것을 개탄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가죽부대는 젊음을 잃어버린 육체를 말한다. 사실 이 시집에는 젊음이 사라지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는 표현이 많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개탄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은 정신상태이며 삶에 대한 태도이다. 그는 가죽부대가 되는 것을 다분히 편안하게 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 그의 눈엔 보이는 것은 먼 수평선이 아니라 줄어져 가는 술잔의 수위이다. 젊음이 사라짐과 인생의 수평의 축소 사이에는 일정한 함수관계가 있다. 위에 인용한 구절의 앞쪽에서 시인이 묘사하는 바에 의하면, 시인의 딸은 사춘기에 들어가 있고 딸의 방에는 굶주린 아프리카 인들의 사진이 있고, 성금을 적어 놓는 난이 설정되어 있는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제목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시인은 이러한 딸을 보면서 자신이 밖으로 뻗어 나가는 에너지 ― 다분히 정치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에너지로부터 소원하게 되었음을 느낀다. 그리하여 자신이 늙고 가죽부대가 되고 심신이 흐릿한 ― 날이 흐린 것이 아니라 심신의 흐림을 날이 흐린 것으로 잘못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의 "흐린 주점"에 앉아 있고 앉아 있을 자신을 괴로워한다. 시의 결구의 표현으로 그는 "아름다운 廢人"이 되어 갈 것을 괴로워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날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가 순전히 개인적인 시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적인 시이고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상황을 말하고 있는 시이다. 시인이 개인적인 괴로움을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 상황 자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상황 전체가 흐린 주점과 같은 것이다. 황지우 씨는 다른 시에서 정각스님을 인용하여 진광불휘(眞光不輝)라는 말에 언급을 하고 있지만, 참다운 빛은 찬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큰 종교적 진리의 하나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 갈망이 있는 곳에서만 그러한 명제가 위안이 될 수 있다. 이 빛은 황지우 씨에게는 종교적인 깨우침, 자비심이나 인도주의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의 이상 등과 같은 것이다. 이 빛이 흐려진 것은 일단 시대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니 만큼 위에 든 것들 가운데 정의로운 사회의 이상 ― 또는 황지우 씨의 관심 대상이었던 사회혁명의 이상의 퇴조가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련에서 황지우 씨가 표현하는 우울은 무엇보다도 시대의 우울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의 존재방식과 관련하여도 사회와 관련하여 우울의 이중구조를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사회에서의 우울은 어둠에 못지 않게 밝음으로 인한 것이다. 물론 이 밝음은 분명하지 않다. 또 다른 문제의 하나는 어둠도 어둠으로서 분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편안함을 제공해준다. 주점의 시인의 편안함은 마음이 마비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간의 경제발전의 덕으로 인한 물질적 생활의 여유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적어도 세속 역사의 관점에서는 완전한 부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회혁명의 이상이 퇴조의 원인도 이 발전에 있다. 그러나 우울은 남는다. 진광불휘는 부처의 빛이 진세에서 쉽게 알아 볼 수 없는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불교적 진리만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시대의 세상의 형편을 말한다. 오늘의 시대에 있어서 하이데거의 표현으로 "공적인 빛은 <진리를> 어둡게 한다." "폐인"이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시대이다. 위의 시에서 황지우는 주점에 앉아 있는 자신을 그려보고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 견딜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시의 다른 곳에서,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 시대의 우울한 편안함을 탐닉하는 것은 혐오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편안한 우울도 마찬가지로 혐오스러운 것이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가 말하고 있는 아름다운 폐인에 대한 혐오감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이 시 자체가 그러한 우울의 탐닉을 드러낸다는 의심을 완전히 버릴 수 없다. 물론 황지우 씨의 시가 퇴폐의 여러 포즈 ― 많은 경우 자유로운 예술의 이름을 쓰이는 퇴폐의 포즈의 시 ― 또는 대중적 저널리즘이나 상업언어를 빌어 쓰는 많은 시들과 같다는 말이 아니다. 오늘의 시는 오늘의 현실을 야기하려고 할 때에도 흐린 현실의 여러 단층의 상호반사를 통하여 어렵게 얻어내는 빛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여 이러한 퇴폐의 언어에 비슷해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빼어 냄으로써 그 배면에 있는 다른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진술은 옥석을 구분하기 어렵게 하는 복잡한 대위 구조의 아이러니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관계된 언어와 사실과 아이러니는 직접적인 언어의 표면에서보다도 해독하는 사고(思考) 작용 속에서 드러난다. 황지우의 시는 이러한 복잡한 시의 전략을 잘 드러내준다.
오늘의 상황은 시의 언어의 성격에서 나타난다. 황지우 씨의 시의 언어가 전통적인 의미의 시적인 언어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절제 없는 내면 독백이나 서정의 속된 언어에 가까이 간다. 그것은 산문적이다. 그러한 만큼 그것은 시적 언어의 단순성, 명확성 그리고 위엄을 보여주지 아니한다. 이것은 더 중립적인 말로는 조소성(造塑性)의 상실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한 때 뉴크리티씨즘은 하나의 작품 - 특히 시가 그 주변환경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 단단하게 짜인 구조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W. K. 웜재트의 "언어적 도상(verbal icon)"은 이러한 생각을 요약하여 표현하는 말의 하나이다. 언어적 도상이란 시각적 영상이면서 동시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현실 해석에 완전히 대응하는 심상을 말한다. (<아이콘>은 종교적인 이미지이다. <아이콘>이라는 숭암의 대상으로의 그림은 그림에 정신적 의미를 완전히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도상이란 물론 작품자체일 수밖에 없지만, 말 자체가 드러내주듯이 그것은 그림, 도상, 영상들, 시각적인 것 ― 일목요연이란 말에 들어 있는 바와 같은 시각적인 것의 선명함을 의식과 언어의 명료도에 비유적으로 적용하여 말한 것이다. 어떠한 전달에 있어서나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시에서 이것은, 이미지스트 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특히 중요하다. 시는 전달과 더불어 분명한 언어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는 분명한 언어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물건이 되려는 경향을 갖는 언어 행위이다. 어떤 언표를 분명한 것으로 결정화하는 데에 시각이외에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다. 여기에 개념의 명증성이나 언어의 음악이 관여되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일이다. 분명한 언어는 어쩌면 그 효과로서 더 잘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언어는 쉽게 기억되는 것으로 보인다. 유종호 교수는 여러 자리에서 외울만한 시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바 있다. 외울만하다는 것은 시의 본질적 욕구에 깊이 관계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들은 요즘의 시가 이러한 시의 요구에서 멀리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황지우 씨가 시가 시조나 김소월이나 정지용이나 박목월의 시는 물론 김수영의 어떤 시로부터도 멀리 있는 시임은 틀림이 없다. 아마 사람들은 이러한 시들을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외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황지우 씨의 시를 포함하여 많은 요즘의 시에서 기억되는 것은 불변의 형태로 배열된 언어이기보다는 어떤 종류의 생각이나 이미지의 단편이기 쉽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는 하나 시가 다시 그 조소성을 되찾는 도리는 없는 일일까.
2
전국 도처에 시비라는 것이 있어, 돌에 새긴 시가 있다. 이러한 것이 언제 어떠한 동기에서 생겨나게 된 것인지 자세히 따져보면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말을 돌에 새기는 것은 오래 기억될 만한 언어가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생각을 로마시대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그의 시에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청동보다 영원하고 왕들의 무덤 피라미드보다 높은
기념비를 세웠노라. 비바람도 북풍도 그리고 수 없는
세월의 쌓임과 시간의 흐름도 무너지게 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죽어 없어지지는 않으리. 나의 일부는
죽음의 여신을 넘어 살아 남으리니…
청동보다도 영원한 것이란 물론 호라티우스 자신의 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의 한정된 삶을 넘어서서 살아 남는 것이 있을 수 있고 거기에 언어도 포함된다는 생각은 호라티우스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죽어 가는 육신에 비하여 오래 남을 명성의 주제는 단순히 그 개인의 소망이기보다 하나의 문학적 관습의 표현이다. 불후의 명작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 말은 삶의 무상에 대한 절실한 느낌과 그의 초월이라는 실존적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기보다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통속적인 용어에 불과하다. 호라티우스의 시도 문학작품을 통하여 불후의 명성을 얻는다는 통념적 주제의 변조에 불과할 것이다.
시를 비석에 새기고 청동에 새기고 또는 주입식이라고 불리는 교육을 통해서 마음에 새겨놓는다고 하여 시가 저절로 기억될 만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비친 바와 같이, 시에는 그 안에 조소성을 향한 충동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시각과 인식의 명료성을 향한 언어의 지향성에 근거한다. 그것은 삶의 혼란에 대하여 스스로를 지키려는 인간의 소망에 의하여 부추겨진다. 불후의 명성에 대한 욕구는 이러한 소망이 개인적인 삶의 연장의 문제로 전이된 것이다. 하여튼 이러한 시의 지향성과 인간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은 상당 부분 시의 조소성을 통하여서이다. 이 조소성의 강화에 리듬과 수사적 디자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 디자인은 모든 의미 있는 지속성의 원리이다. 그것은 언어에 있어서도 말의 조소성을 높이고 또 기억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기하학은 물질과 생물체의 원리이면서 정신의 숨은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한문으로된 성구들, 安分知足, 巧言令色, 塞翁之馬 등의 말들이 대체로 사분의 사박자의 간단한 리듬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리듬의 균형은 다른 디자인의 요소들에 의하여 보강된다. 위에서 사언(四言)은 다시 둘로 나뉘어져서 규칙적인 분절을 이룬다. 여기의 成句들에서는 그것은 분명치 아니하지만, 대체로 한시에서 그리고 일반적으로 한문에서 대조는 시적인 조소성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江流天地外/山色有無中과 같은 구절은 분명하게 대구를 이룸으로써 강한 디자인의 효과를 낸다. 그러나 지나치게 뚜렷한 기학적 구조는 음악과 수사의 소박성 ― 미세련의 표시가 되는 수도 있다. 우리는 긴가민가 하는 ― 형식을 시시하면서 그것을 모호하게 하는 모양을 더 애틋하게 기억할 수도 있다. 月落島啼 ???滿天 / 江村漁火對愁眼과 같은 시구에도 그 근본적 디자인으로 하늘과 땅의 대조가 들어 있지만, 이 대조는 여러 다른 요소들에 의하여 가리워 있다. 한 시에 있어서 대구나 대련은 시와 수사의 핵심적인 수법이면서도 주제, 이미지, 또는 平仄의 음악과 관련되어 무수히 변조된다. 이것은 내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음악이나 수사의 디자인을 뒷받침하는 것은 주제이다. 이것이 그 바탕을 이룬다. 수사나 음악도 그러하기는 하지만, 주제는 더욱 분명하게 작가의 마음대로 만은 만들어질 수 없다. 주제는 많은 경우 개인적인 선택의 결과인 듯하면서도 시대가 한정하는 문제의 영역 속에 있다. 주제는 다른 요소보다 더 직접적으로 우리의 생각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사물에 대한 식별의 역사적 퇴적과 시대적 상황의 지평 속에서 결정화된다. (오늘의 대중획일주의 시대에서 그것은 더욱 간단하게 전적으로 시대적 유행의 소산이라고 하겠지만.) 조소성의 기본 요소는 단순함이다. 그러나 주제의 단순성 그리고 기억할만한 표현의 단순성은 시대적 공감 ― 특히 삶에 대한 세계관적 도덕적 이해의 시대적 공감이 없이는 이룩해내기 어렵다. 말할 것도 없이 쉽게 정형화되는 생각은 상투적인 생각에 가까워진다. 위에서 든 安分知足 등의 한문성구가 도덕적 격언이나 처세훈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청동에 새긴 언어보다도 영원한 언어를 말하는 호라티우스의 시들은 대체로 그러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의 도덕은 대체로 상식과 중용의 관점에 입각한 것이다. "잘못 없이 깨끗하고 흠 없는 사람은 / 창도 활도 독묻힌 살도 나부끼는 기빨도 필요없나니……" 하는 식의 시는 대표적인 것이다. 깨끗한 군자는 도둑이나 다른 잠배들이 범할 수 없다는 생각이 우리의 유교전통에도 있지만, 호라티우스에도 비슷한 생각이 있는 것이다. (在德不在險!) 물론 공감의 기초가 단순히 도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시가 비시적이 되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공감은 보다 불분명한 형태로 시적 표현의 토대를 이룬다. 위의 月落導啼???滿天 張編의 시구는 도덕적 교훈을 내세우기보다는, 많은 전통적인 한시(漢詩) 특히 당시(唐詩)가 그리하듯이, 인간활동의 배경을 이루는 광대무변한 우주적 배경을 상기시킨다. 이 상기는 번설한 인간사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마음을 준비하여줌으로서 도덕적 의미를 갖는다. 후반의 두 줄, 姑蘇城外寒山寺 / 夜半鐘聲到客船이 절간에서 울려오는 종소리를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 논리적인 전개라고 할 것이다.
우리 시대에 어떤 공감이 있는가. 우리 시대에 있어서 공감은 아닐 망정 삶에 대한 전체적인 개념을 제공해주는 것은 오랫동안 이데올로기였다. 적어도 민족이라든가 통일이라든가 민중이라든가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생각과 언어의 단순한 명료화를 가능하게 했다. 오늘에 와서 무소유와 금욕의 아름다움이나 자연의 위로를 말하는 것은 그에 비슷한 시대의 공감대에 가까이 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참으로 깊은 의미에서 우리의 삶을 감싸고 있는 공감의 지평이 있는가. 그것은 어떠한 것인가. 위에서 언급한 황지우 씨의 시를 통하여 우리는 오늘의 언어가 다층적 사유와 복잡한 아이러니를 구사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였다. 어떤 경우에나 참으로 기억할 만한 언어는 이데올로기가 제공하는 생각이나 공적인 정치 목표나 도덕적 교훈을 요약한 상투구로 만들어지지 아니한다. 조금 전에 호라티우스의 고결한 삶에 대한 시에 언급했지만, 고결한 삶에 대한 요구로 시작하는 이 시는 끝가지 읽어보면 간단하지 않은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덕 있는 자에 해 없다는 것을 호라티우스는 예를 들어 말한다. 농장에서 멀리 산보를 하다가 그는 늑대를 만났다. 그런데 늑대는 자기를 보고 멀리 도망쳤다. 그러니 도덕적 인간이 어떠한 곳을 가든지 황무지든 늪이든 열풍의 사막이든 그 온전함이 손상이 될 수가 없는 것임은 분명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사람이 고결하니 늑대가 도망가는 것인가 아니면 늑대가 도망가니 사람이 고결함을 알 수 있는 것인가. 또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호라티우스가 말하는 것을 보면, 깨끗한 양심의 인간으로서 시인이 하겠다는 것은 애인 랄라게를 찬미하겠다는 것이다. 도덕적 인간은 험지에서도 안전하지만, 사랑에 헌신하는 사람도 위험이 없는 것이다. 험이 없는 인간은 어떠한 험지에서도 그러한 것이 세상의 이치인 듯 살아가는 순진한 헌신의 중요성으로 보인다. 이렇게 호라티우스의 간단한 시에도 아이러니는 있다. 그것 없이는 그의 시는 재미있는 시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고 그 개인의 시적 표현이 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3
여러 해 전에 미국의 시인 로버트 크릴리가 한국을 방문하여 시 낭독과 강연을 행한 일이 있다. 여러 해 전의 일로서 분명한 기억은 없지만, 그의 소박한 차림새와 인품에 대한 인상과 함께 두 가지 말이 머리에 남아 있다. 하나는 몇 사람이 시내의 허름한 식당에서 그와 함께 식사를 같이 했을 때 그가 표명했던 매우 소박한 희망이다. 그는 식사를 끝내고 헤어질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밤샘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가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크릴 리가 한국에 들른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는데, 그는 한국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은 것이었고, 그의 생각으로는 한 사회의 사람들의 삶의 느낌을 아는 데에는 주마간산의 여행이나 추상적인 사회조사 보고서보다도 제한된 사람과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말하자면 첫 대면의 예절을 넘어 갈만한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때 그가 제안한 밤샘의 담론에 참여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안이 시인의 삶의 구체성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또 그의 개인적인 여러 체험으로부터 끌러낸 깊은 교훈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의 삶의 진실은 현대사회의 획일화, 일반화 그리고 사회관계의 상부적 공식의 저편에 있는 것일 것이다. 크릴리의 다른 말은 그가 고려대학교에 와서 강연과 시 낭독을 하면서 한 말이다. 그것은, 시는 언어로 쓰이는 것이면서 동시에 시의 언어의 에너지는 사물의 에너지에서 온다는 말이었다. 구체적인 인간과의 깊은 대화, 이것도 말하자면 구체적인 삶의 에너지를 감득하자는 것이었을 것이다.
"시의 언어의 에너지는 사물의 에너지에서 온다." 시는 단순히 언어의 예술이 아니라 물질 세계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 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건인가, 상품인가 또는 이러한 것들의 체계로서의 사회구조인가. 크릴리의 생각에 근본적인 것은 유동하는 경험의 현실이다. 그는 한 시집의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사물은 지속된다. 나는 단지 그것들과 더불어 있었을 뿐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속하는 사물과의 공존 속에서의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내가 느끼는 것 ― 이 느낌은 적어도 그 순간 내가 그것인 바의 유일한 것이다." 보다 큰 삶의 기획은 이러한 순간의 느낌에서 넘쳐나는 여분이다. "의도란 이러한 모든 느낌의 변형가능성, 그 가능성의 계기이다." 또 그는 다른 시집에서 말한다 : 세계는 "능율이나 이해나 또는 다른 어떤 상급 노선 등등의 가당치도 않는 것으로 하여 잊어버리게 된" 바로 우리가 그 때 그 때 살고 있는 곳이다. 월리암 제임스는 자기 철학을 근본적 경험주의 (radical empiricism)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생각에 모든 것의 근본은 순수경험 ― "나중에 개념적 범주를 사용하는 성찰에 질료가 되는 삶의 직접적인 흐름 (the immediate flux of life)"이었다. 크릴리의 위의 말들에서 표명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 경험주의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망정 근본적 경험주의자가 아닌 시인이 있을까. 내가 이 자리 이 순간 느끼는 것이 바로 내가 세상과 더불어 있는 것이며 나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이라는 느낌이 없다면, 이미 존재하는 시와 문학 그리고 수많은 말 ― 이러한 것들에도 불구하고 새로 내가 시를 써야할 이유가 없는 것일 것이다. 시의 순간은 순수한 경험의 순간이다. 이것은 이미 있는 언어 표현을 넘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경험을 "원초적 질료(primary stuff)"라고 말하고 그것을 세계의 근본에 있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실체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다. 인간 생활의 쓰레기들이 가득 떠 있는 경험의 강물의 밑바닥에 원초적 맑음이 있다고 상정하는 것처럼 순수경험은 관념과 습속과 제도의 밑에 맑게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의 경험은, 그것의 근원이 인공적인 것이든 아니든, 개념적 범주와 관습과 제도를 포함한다. 또 이러한 것들은 틀림없이 경험 속에서 체험되는 것이면서 그와 동시에 경험 자체를 형성한다. 우리의 감각, 느낌, 감정, 개념 ― 이러한 것들은 모두 역사적으로 형성된다. 이 역사는 개인의 역사와 더불어 사회의 역사를 말한다. 우리의 경험은 철학적 성격과 함께 사회학적인 성격을 갖는다. 사회를 규정하는 추상적인 공식들도 사람의 현실적 삶의 일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것을 다시 한 번 뒤집어 되풀이한다면, 이러한 것들도 사람의 경험 속에서만 현실이 된다. 사회학적 범주들은 경험 속에서 형성 또는 구성된 것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사회 결정론은 이 형성 또는 구성적 측면을 놓치고 그것을 지나치게 변함없는 사실로만 본다. 사람이 사는 세계에는 무수한 사실들이 있다. 그것은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역사는 이러한 사실들이 단순한 개개의 사실로 끝나지 않고 원인과 결과 또는 의미의 연쇄를 이룬다는 것을 말한다. 이 연쇄를 지나치게 일직선적 인과관계에서 볼 때, 그것은 실증주의나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으로 귀착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의 연쇄에는 주체의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주체는 하나의 지속하는 힘이다. 무엇이 역사를 일정하게 지속하게 하는 것은 사실들의 관계, 집단적 행동, 개인의 이니셔티브 ― 이 모든 것의 총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총체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파악을 넘어간다. 그리하여 그것은 신비에 속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철학의 궁극적인 물음은 어찌하여 아무 것도 없는 대신 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말하여진다. 그러나 또 다른 궁극적인 질문은 왜 정지가 아니라 움직임이 있는가, 어찌하여 시작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있음의 원리, 움직임이 있게 하는 힘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새로운 개체로서 태어나는 인간 그리고 그가 세상을 경험하고 삶을 살아가는 일에도 들어 있다. 산다는 것은 늘 새로운 일이다. 이 새로움은 주어진 삶의 조건의 확인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런 경우라도 이 확인 그 자체가 새로운 것이다. 이 새롭게 하는 일은 어디에서 오는가. 결국 사회와 역사가 새로워지는 힘의 한 근원은 이 개체의 시작하는 힘에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개인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느끼고 감각하는 일에도 그 힘이 관계되어 있는 것일 것이다.
순간의 느낌에 대한 크릴리의 긍정은 이러한 느낌의 가능성 ― 이 가능성의 힘에 대한 경이의 표현이다. 그의 경험주의는 이것을 보이지 않게 하는 능율이나 이해나 다른 상급 노선을 거부한다. 그의 경험주의 또 현대문학의 근본적 경험주의는 모든 상급 노선의 경직성과 허위 ― 그것들에 의한 살아 움직이는 삶의 위축에 대한 항의이다. 20세기에 있어서 문학의 새로움은 이 항의를 계속하는 전위 문학 또는 전위 예술에 의하여 가능하여졌다. 이 전위 예술은 개체의 회의와 모색으로써 사회적 관습의 허위를 깨트리려 한다. 그러나 우상 파괴적인 문학의 경우에 있어서도 단지 그것만으로 널리 인간에게 공통된 것 ― 사회적임과 함께 형이상학적인 삶의 공동 기반을 떠난 것만은 아니다. 개체의 경험은 이미 그것을 포함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깊은 정신적 추구는 극단적으로 개체적인 추구이면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자아의 깨우침으로 끝났다. 모든 시인은 그의 개체성의 깊이로부터 경험하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철저하면 철저할수록 그 개체성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지성을 암시한다. 그 보편적 언어는 쉽게 상투어로, 슬로건으로 옮겨지고 동리의 송덕비에 새겨질 수 있는 종류의 언어가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시의 언어가 갖는 근원적인 조소성의 암시를 느끼게 한다. 현대문학의 계시 ― 또 모든 문학의 계시는 모두가 각각의 개체로 있으면서, 우리의 말이 시대의 구호에 맞든지 아니 맞든지 간에, 우리가 삶의 새로움 속에 있는 한, 같은 시간과 공간,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간 존재의 신비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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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구 너무 길어요. 다 읽기도 전에 진력이 나서 어디 읽어볼 마음이나 먹어볼 수 있을까?
송시인,우리 회원들 공부 시키는 것도 좋지만 이제까지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회원이 대부분 일텐데 갑자기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글 올리면 사고날 뿐만 아니라 모두가 문학회를 탈퇴 한다고 야단들일 거에요. 이제는 숨 고르기 일환으로 좀 자제하시고 중간중간에 예문으로 잘된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아무튼 수고가 많으시고 참으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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